[오션 뷰] 테라베크렐… 우리 수산물은 안전한가?

백현충 기자 choo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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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충 해양산업국장·한국해양산업협회 사무총장

후쿠시마원전 오염수 방류 초읽기
수산물 불신 가중·수요 급감 현실로
“찜찜해서 못 먹는다” 막연한 두려움
‘과학 맹신’ 아니라 과학적 설득 절실

살다 보니 참 많은 걸 ‘억지로’ 공부하게 된다. 요즘 언론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용어가 ‘테라베크렐(TBq)’이 아닐까 싶다. 일본 후쿠시마원전 오염수의 방사능 수치를 나타내는 단위다. 우리가 잘 아는 퀴리 부부와 함께 방사능을 발견해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앙투안 앙리 베크렐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란다. 아무튼 굳이 외울 필요가 없는 용어를 ‘일상적’으로 듣는 것 자체가 공포다.

후쿠시마원전 오염수 방류가 임박했다는 보도가 잇따른다. 일본 정부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평가보고서 발표를 계기로 이르면 내달 해양 방류를 계획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은 후쿠시마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계획을 검증한 결과 “다핵종제거설비(ALPS)로 걸러 낸 오염수 방류가 국제 기준에 적정하다는 최종 결론을 내렸다”면서 “어류와 어패류, 주변 해양 환경 전체에 문제가 없으며 영향은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일본 원전 오염수 방류를 반대하는 시위가 한국과 일본 등에서 매일 열리고 있다. 하지만 오염수 방류는 이제 기정사실이 된 듯하다. 지금 상황에서 IAEA의 평가보고서를 뒤집고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막을 수단은 없어 보인다. 세계 여론을 주도하는 주요 7개국(G7)이 동의했고, 우리 정부도 “존중한다”는 외교적 표현으로 이를 사실상 수용했다.

후쿠시마 오염수는 과학적 분석과 무관하게 우리 수산물에 대한 불신을 가중시켰고, 실제로 수요 급감을 불렀다. 연근해는 물론 가두리 양식장 수산물도 소비자들은 기피하고 있다. 횟집은 코로나19 때보다 훨씬 더 심각한 상황이란다.

우리 수산물은 ‘과학적으로’ 안전하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2011년 3월부터 지난달까지 약 7만 5000건의 수산물에 대해 방사능 검사를 실시했고, 그중 부적합 판정을 받은 것은 단 1건도 없다. 방사능 때문에 문제가 된 수산물은 전혀 없다는 얘기다. 최근에는 양식장, 위판장 수산물의 해역·품종별 안전필증도 발급했다. 시료 수거와 시험, 분석 절차를 거쳐서 ‘안전’을 보증한 제도다.

소비자가 특정 수산물에 대해 방사능 검사를 요구하는 것도 가능하다. 모든 수산물에 대한 ‘원산지 의무 표시’는 물론이고 수입에서 사용까지 수산물 유통 이력을 총괄적으로 관리하는 제도도 시행되고 있다. 수산물 생산과 유통에서 이렇게 조밀한 시스템이 가동된 적은 없었다. 그러나 공포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오히려 “찜찜해서 수산물을 더 이상 먹을 수 없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악성 소문은 후쿠시마 앞바다에서 잡힌 이른바 ‘세슘 우럭’에서 극대화했다.

세슘 우럭은 우리나라에 수입될 개연성이 전혀 없고, 우럭은 전형적인 정착성 어종이라서 우리 해역으로 이동할 수 없다고 하는데도 정부를 우롱하는 세슘 우럭 퍼포먼스는 다반사로 일어났다. 정부 대응은 그러나 악성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 한참 뒤에야 공식 해명으로 이뤄졌다. 위기는 실재와 허구가 혼재하는 시점에 늘 발생한다. 정부가 더 신속하고, 더 단호하지 않으면 소문을 잠재울 수 없다는 얘기다. 특히 일본산 수입 수산물에 대해 정부는 더 단호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

솔직히 정부 대응은 그로시 사무총장보다도 못한 듯하다. 그로시는 ‘기준에 맞는다’는 것만으로 안전에 대한 우려를 떨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에 과감히 동의했다. 그러나 무언가 끔찍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하거나 공포에 빠진 이들을 찾아가 “이건 그런 일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국제기구로서의 사회적 책임이라고 8일 우리나라를 직접 찾아서 가진 언론 인터뷰에서 강조했다. 그의 정치적 수사를 믿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러나 공포에 대처하는 방법에 대해선 공감할 수 있다.

무지에 대한 공포는 늘 있었다. 그래도 합리적인 추론과 지식을 축적하면서 우리는 과학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우주여행이 가능한 지금도 ‘이성’은 여전히 허약하고 ‘지식’은 부족한 것 같다.

악성 댓글 때문에 이미 많은 과학자들이 말문을 닫았다. 피로감을 넘어서 스스로 공포를 느꼈다고 한다. 공포 마케팅이 횡행하고 ‘과학을 믿으면 친일’이라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이 여과 없이 등장하는 현실에서 ‘과학적 진실’을 전해 줄 과학자는 많지 않다. 그 후유증은 온전히 우리 몫이 될 테다.

스페인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의 판화집 〈변덕〉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깨어난다.’ 왜곡된 논리, 근거 없는 낭설, 정치적 공작을 경계하자는 경구다.



백현충 기자 choo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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