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새마을금고
대표적인 협동조합형 서민 금융기관인 새마을금고는 부산·경남에서부터 시작했다. 1960년 캐나다에서 협동조합 개념을 한국에 처음 들여온 부산 중구 메리놀병원 메리놀수녀회 소속 미국인 수녀 메리 가브리엘라는 “오직 2600만 한국 국민에 대한 사랑이었다”라고 그 동기를 밝혔다. 빈곤의 악순환에 허덕이던 시절, 금융 형편이 어려운 자영업자나 농민, 고리대금에 시달리는 서민의 고통을 덜어 주고, 자립의 길을 열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당시에는 한국 고유의 상부상조 정신이 담긴 계, 두레 등 미풍양속이 변질돼 돈을 떼이기 일쑤였다.
1963년 부산 메리놀수녀회에서 주최한 가브리엘라 수녀의 신용 강습회를 수강한 경남 산청 마을 주민들이 하둔신용조합을 설립한 것을 시작으로 창녕군 성산면 월곡리, 의령군 의령면 정암리, 의령면 외시리, 남해군 남해면 마산리에서 새마을금고의 전신이 잇따라 태어났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에 힘입어 마을금고 숫자와 도시 지역 회원 수도 늘어났다. 1983년 새마을금고법이 제정되면서 신용조합, 재건금고, 마을금고 등으로 불렸던 명칭도 새마을금고로 통일되고, 주무 부처도 내무부(현 행정안전부)로 일원화됐다.
창립 이래 60년 동안 금융 자산 규모 284조 원, 거래 고객만 2262만 명에 이를 정도로 덩치를 키웠지만, 일부 금고는 선거 부정 및 횡령, 부실 대출 등 금융 사고와 정치권 유착으로 숱한 문제를 노출했다. 전국 1294개 금고 임직원 2만 8891명 중 임원만 47%인 기형적 조직 구조와 고액 연봉으로 ‘신의 금고지기’라는 비아냥을 들을 지경이었다.
새마을금고 연체율이 6% 이상 치솟고, 부동산 대출 연체율은 9.63%로 역대 최악을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다른 금융기관과는 반대로, 새마을금고만 부동산 PF대출을 늘린 것이 화근을 키웠다는 분석이다. 최근에는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 조짐이 나타나고, 인터넷에는 부실 지점 명단 확인 방법까지 나도는 지경이다.
‘오직 한국민에 대한 사랑으로 빈곤의 악순환을 끊어 내기 위해’ 시작했던 새마을금고가 왜 이렇게 됐을까. 정부는 ‘관리가 가능한 수준’이라며 위기설 진화에 분주하지만, 위기의 진정한 원인은 초심을 잃었기 때문은 아닐까. 부실 금고 통폐합과 불투명한 지배 구조 개선, 금융감독원으로 관리감독기관 전환도 당연히 필요하지만, 1960년 ‘서로 도와 다 함께 잘살아 보자’는 협동조합 도입 정신을 회복하는 것이 가장 시급해 보인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