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 전성시대, 낭만파 영화팬 유혹하는 ‘자동차 극장’

이대성 기자 nmak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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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플렉스 확장·OTT 공세 밀려 쇠락의 길
자동차 극장만의 매력·낭만으로 명맥 이어
부산 유일 태종대 ‘CGV 드라이브 인 영도’
영화 보며 음식 먹고 수다…‘프라이빗’ 만끽
계절·날씨 잘 맞는 영화 볼 땐 즐거움 배가

부산 영도구 태종대에 있는 자동차 극장 ‘CGV 드라이브 인 영도’에 영화 상영을 앞두고 관람객들의 차량이 하나둘 자리를 잡고 있다. OTT 전성 시대에도 자동차 극장은 자동차 극장만의 매력과 낭만을 강점으로 관람객들을 유인하고 있다. 부산 영도구 태종대에 있는 자동차 극장 ‘CGV 드라이브 인 영도’에 영화 상영을 앞두고 관람객들의 차량이 하나둘 자리를 잡고 있다. OTT 전성 시대에도 자동차 극장은 자동차 극장만의 매력과 낭만을 강점으로 관람객들을 유인하고 있다.

“OTT(Over The Top·인터넷을 통해 보는 TV 서비스)로 집에서 영화를 보는 시대에 자동차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고?” 자동차 극장에 영화를 보러 가겠다는 말에 주변에서 들은 핀잔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자동차 극장에서 영화를 볼려면 애써 자동차를 몰고 가서 그다지 편하지도 않는 좌석에 앉아 FM 라디오 주파수를 맞춰 영화를 봐야 하는 수고로움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자동차 극장이 OTT 전성시대에도 명맥을 이어 가고 있는 건 자동차 극장만의 매력과 낭만을 잊지 못하는 이들이 여전히 적지 않게 때문이다. 자동차 극장이 생겼다 사라졌다 반복했던 부산에 최근 상설 자동차 극장이 생겼다. 자동차 극장이 가진 매력을 들여다 보고, 알차게 즐기는 법과 에티켓에 대해 알아봤다.

자동차 극장 ‘CGV 드라이브 인 영도’ 입구에 있는 안내판. 상영 중인 영화와 FM 라디오 주파수 설정 등 관람 방법을 안내하고 있다. 자동차 극장 ‘CGV 드라이브 인 영도’ 입구에 있는 안내판. 상영 중인 영화와 FM 라디오 주파수 설정 등 관람 방법을 안내하고 있다.

■맘껏 먹고 수다 떨고…나와 우리들만의 공간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시간, 부산 영도구 태종대에 자리한 자동차 극장 ‘CGV 드라이브 인 영도’. 오후 8시 상영되는 영화를 보기 위해 안내 직원이 지정해 준 주차면에 자리를 잡고, 라이트를 끈 뒤 FM 라디오 주파수를 맞춘다. 차량의 불빛이 모두 꺼지고 일대는 숨죽인듯 고요해진다. 이곳에서는 평일(월~목요일) 하루 한 차례(오후 8시), 주말(금~일요일)에는 두 차례(오후 8시 첫 회) 영화를 상영한다. 스크린에서 영화가 시작되고, 차량 스피커에서 음향이 흘러 나온다. FM 라디오로 듣는 음질은 선명하면서도 저음까지 잘 전달돼 생각보다 괜찮다. 미리 싸 온 음식들을 펼쳐 놓고 맘껏 먹고 수다를 떨며 영화를 감상한다. 영화관에서는 언감생심, 주변 눈치를 안 봐도 되는 자동차 극장에서만 누릴 수 있는 호사다.



자동차 극장의 화질과 음질은 실내 영화관에 비해 다소 떨어질 수 있다. 스크린 수가 하나여서 다양한 영화를 골라 볼 수 없다는 단점도 있다. 그러나 자동차 극장은 사적인 공간에서 소중한 사람과 영화를 보며, 맛있는 음식을 먹고 얘기를 나누며 추억을 쌓을 수 있다. 자동차 극장은 연인들에겐 로맨틱한 데이트를, 친구나 가족 관람객에겐 안락함과 휴식을 선물한다. 영화를 보며 저녁 식사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무엇보다 이색적인 경험과 낭만을 잊지 못해 자동차 극장을 찾는 이들도 많다. 밀폐되지 많은 야외에 차를 세워 두고 영화를 보기 때문에 실내 영화관보다 타인과 접촉이 상대적으로 덜해 감염병 확산 우려도 적다. 폐소공포증이 있거나, 화재 등 안전에 민감한 사람들도 자동차 극장에서는 어렵지 않게 영화를 볼 수 있다.

‘CGV 드라이브 인 영도’에서는 미리 음식을 가져가지 않아도 된다. 배달 음식을 주문한 뒤 받을 수 있도록 ‘딜리버리 픽업존’이 마련돼 있다. ‘CGV 드라이브 인 영도’에서는 미리 음식을 가져가지 않아도 된다. 배달 음식을 주문한 뒤 받을 수 있도록 ‘딜리버리 픽업존’이 마련돼 있다.
‘CGV 드라이브 인 영도’ 자동차 극장 한쪽에는 태종대 관광 열차인 ‘다누비호’가 설치돼 있다. 어둠이 내리면 예쁜 경관 조명을 밝히는 포토존으로 변신한다. ‘CGV 드라이브 인 영도’ 자동차 극장 한쪽에는 태종대 관광 열차인 ‘다누비호’가 설치돼 있다. 어둠이 내리면 예쁜 경관 조명을 밝히는 포토존으로 변신한다.
자동차 극장 영사실에서 스크린을 향해 빔 프로젝터를 쏘고 있다. 자동차 극장 영사실에서 스크린을 향해 빔 프로젝터를 쏘고 있다.

부산 상설 자동차 극장 이모저모

‘CGV 드라이브 인 영도’는 올해 5월 3일 문을 열었다. 부산관광공사는 야간에 이용 수요가 낮은 주차장 부지를 활용해 원도심 야간 관광을 활성화하기 위해 영도구 태종대 유원지 부설 주차장 중 일부(1만 1022㎡·142면)에 상설 자동차 극장을 조성했다. 현재 부산 유일의 자동차 극장이다. 자동차 극장 이름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멀티플렉스 영화관 체인인 CGV가 들어갔다. 자동차 극장 운영 기관인 부산관광공사가 CGV의 예매 시스템을 활용하고, 상영 영화 배급사를 CGV를 통해 확보하고 있어서다. 개봉 영화 중 어떤 영화를, 어느 정도의 기간만큼 상영할지는 CGV가 부산관광공사와 협의해 결정한다.

예매는 CGV 홈페이지나 앱에서 상영관 ‘DRIVE IN 영도’를 찾아 일반 영화관 예매 방법처럼 하면 된다. 관람료는 차량당 평일 2만 6000원, 주말 3만 원이다. 현장에서도 발권이 가능한데, 카드(신용·체크)로만 결제할 수 있다. 자동차 극장은 연중 무휴지만, 태풍 등 악천후 때나 안개가 심할 땐 상영이 취소된다. 안개가 끼면 영사실에서 쏘는 빔이 스크린까지 잘 닿지 않을 수 있고, 닿더라도 영상 질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상영이 힘든 날엔 사전에 CGV 홈페이지에 공지하고, 예약 관람객에게도 알려 준다.

자동차 극장의 자리는 ‘차고가 낮은 경차나 승용차는 앞열, 높은 SUV 차량은 뒷열’ 원칙하에 선착순으로 배정된다. 앞차의 방해 없이 영화를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최근엔 승용차라고 하기엔 차고가 높고 SUV라고 하기엔 낮은 CUV 차량이 늘고, 경차인데도 차고가 높은 차량도 있어 자리 배정에 곤혹스러운 일도 적잖다.

차량당 인원 제한은 없다. 혼자 또는 둘이 영화를 보는 경우가 일반적이지만, 3~5명이 자동차 극장을 찾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직접 뒷좌석으로 가 영화를 볼 수 있는지 확인해 보니 쉽지 않다. 몸을 바닥에 바짝 낮추는 등 힘들고 어려운 자세를 취하지 않는 이상 스크린이 대부분 가려졌다.

영화관 관람료가 2인 기준 ‘팝콘 안 먹어도 3만 원 시대’가 됐다. 그런 면에서 ‘CGV 드라이브 인 영도’는 가격 경쟁력을 갖췄다. 일반 영화관들처럼 통신사 할인이나 포인트 적립과 사용도 가능하다. 현재 부산관광공사는 관람객들(차량 1대당)에게 장미꽃(조화) 한 송이와 수제 어포 스낵, 팝콘을 선물하고 있다. 미리 음식을 가져가지 않아도 된다. 부산관광공사 관광사업팀 이성철 매니저는 “지역 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매점을 배치하는 대신, 배달 음식을 주문한 뒤 받을 수 있는 ‘딜리버리 픽업존’을 설치했다”고 말했다.

부산관광공사는 ‘CGV 드라이브 인 영도’를 찾은 관람객들에게 장미꽃(조화) 한 송이와 수제 어포 스낵, 팝콘을 선물한다. 부산관광공사는 ‘CGV 드라이브 인 영도’를 찾은 관람객들에게 장미꽃(조화) 한 송이와 수제 어포 스낵, 팝콘을 선물한다.

■실속도 찾고 예절도 지키고

자동차 극장은 멀티 플렉스의 확장과 OTT 가입자 증가 속에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부산에서는 2002년 부산 사하구 을숙도에 문을 열었던 자동차 극장 ‘부산시네마’가 2016년 폐관했다. 꽤 오랜 기간 운영됐기 때문에 아직도 을숙도 자동차 극장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2021년 6월에는 기장군 오시리아 관광단지 내에 부울경 최대 규모(스크린 2개·308면)인 ‘롯데시네마 드라이브 오시리아’가 개관했다. 그러나 2022년 11월 롯데시네마 브랜드 제휴와 부지 임대 계약이 만료됐다. 이후 사업자 단독으로 ‘드라이브 오시리아’라는 이름으로 운영했지만 지금은 휴업 상태다. 부산에서는 2020년 부산항 여객터미널 야외 주차장에서 무료 자동차 극장 행사가 진행되기도 했다. 울산에서 상설 운영 중인 자동차 극장은 북구 ‘블루마씨네 자동차 극장’과 ‘울주군 범서온천 자동차 극장’ 등 2곳이다. 경남엔 현재 상설 자동차 극장이 없다.

자동차 극장을 알차게 즐기려면 우선 좋은 자리를 선점하는 게 중요하다. ‘CGV 드라이브 인 영도’ 첫 영화는 상영 두 시간 전(오후 6시)부터, 주말 밤 두 번째 영화는 상영 30분 전부터 입차가 가능하다. 보통 3~4열이 명당으로 불린다. 1~2열은 스크린과 너무 가까워 고개를 많이 들어야 할 수도 있다.또 계절과 날씨에 맞는 영화를 선택하면 좋다. 무더운 여름밤이나 비가 오고 바람이 많이 부는 날에는 더위를 식혀 주거나 긴장감을 더해 줄 공포·스릴러 영화를, 봄날이나 밤하늘이 맑은 날엔 멜로나 로맨스 영화를 보면 좋다. 관람의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선 차량 계기판, 블랙박스, 내비게이션 화면을 끄거나 담요나 종이 등으로 덮어 불빛을 차단해야 한다. 시동을 끄고 영화를 보고 싶거나 차량 라디오가 작동되지 않을 땐 ‘CGV 드라이브 인 영도’에서 라디오를 무료로 빌려 준다.

영화가 시작한 뒤 10분까지는 입차를 허용하고 있지만, 영화 시작 전에 입차를 하고 관람 준비를 마쳐야 한다. 상영 중 차량 이동도 자제해야 한다. 시동이 켜진 상태에서 브레이크를 밟으면 뒤차에 방해가 될 수 있다. 일부 차량은 시동이 켜진 상태에서 후미등에 꺼지지 않는데, 이땐 가림막으로 가려야 한다. ‘CGV 드라이브 인 영도’에서는 가림막도 무료로 대여·설치해 준다. 자동차 극장은 전 구역이 금연이다. 쓰레기를 되가져가는 것도 잊지 말자.



이대성 기자 nmak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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