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교육, AI…놀이와 배움 동시 만족 ‘테마박물관’ 3곳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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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거제포로수용소 유적박물관’
서울 나들이 땐 ‘서울교육박물관’
부산엔 ‘애플컴퓨터박물관’ 눈길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수용된 북한군 중 한 ‘반공포로’. 멸공·애국·태극기 등을 몸에 새겼다.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수용된 북한군 중 한 ‘반공포로’. 멸공·애국·태극기 등을 몸에 새겼다.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 내 평화탐험체험관에서 만나 볼 수 있는 격전지 현장. 간접적인 경험이지만, 전쟁과 평화의 의미를 생각해 보게 된다.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 내 평화탐험체험관에서 만나 볼 수 있는 격전지 현장. 간접적인 경험이지만, 전쟁과 평화의 의미를 생각해 보게 된다.

곧 여름방학이다. 학부모들의 나들이 고민이 시작됐다. 자녀를 생각하면 배움이 있는 박물관은 필수 코스다. 그 배움이 좀 더 와닿기 위해 시의적절한 장소라면 더할 나위 없겠다. 2023년 여름에 방문하기 딱 좋은, 아이 어른 모두에게 유익한 박물관 세 곳을 소개한다.

■ 또 다른 전장…포로수용소 유적박물관

이달은 6·25전쟁과 관련해 특별한 의미가 있다. 70년 전인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되면서 동족상잔의 비극이 멈췄기 때문이다. 전쟁 포로를 수용하기 위해 1951년부터 운영을 시작한 거제도 포로수용소는 한국전쟁의 참상을 잘 보여 주는 유적이다.

옛 현장엔 ‘포로수용소 유적박물관’이 들어서 전쟁의 아픔을 생생히 전한다. 현재 ‘캠프 넘버 원, 거제도 포로의 일상’이란 주제로 국립민속박물관과 공동기획전을 열고 있다. 박물관에는 당시 4개 구역, 28개 수용동으로 이뤄진 포로수용소 구조를 지도 위에 재현해 놓았다. 포로수용소에는 정규 군인뿐만 아니라 유엔군이 의심스럽다고 판단한 피란민과 여성·아이까지 있었다. 수용 인원은 북한군 15만 명, 중공군 2만 명 등 최대 17만여 명에 달했다.

6·25전쟁은 ‘포로의 대우에 관한 제네바 협약’이 최초로 적용된 전쟁이다. 이전과 달리 전쟁 포로에게 세 끼 식사는 물론 취미·여가 등 일상 생활을 보장했고, 직업교육도 제공했다. 포로들이 체력단련용으로 만든 아령과 직접 제작한 신문, 여가활동 시간에 그린 유화 등 다양한 전시물을 통해 당시 생활상을 짐작해 볼 수 있다.

1951년부터 운영을 시작한 거제도 포로수용소 전경 모형. 최대 17만여 명을 수용했다. 1951년부터 운영을 시작한 거제도 포로수용소 전경 모형. 최대 17만여 명을 수용했다.
포로들이 체력단련용으로 만들어 사용한 아령. 포로들이 체력단련용으로 만들어 사용한 아령.

포로수용소는 겉으론 평화로워 보였지만 속은 참혹한 전장의 연장이었다. 친공-반공 포로들 사이 극렬한 사상대립으로 폭력 사태가 빈번했고, 친공 포로들이 폭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1952년 말까지 2년여간 1만 명이 넘는 포로들이 수용소 안에서 사망했는데 상당수는 폭력 사태로 희생된 이들이었다.

포로수용소 유적박물관을 포함해 주변 일대는 ‘유적공원’으로 조성돼 있다. 입장료를 내고 유엔분수광장을 지나 공원에 들어서면 관람 동선을 따라 탱크전시관·디오라마관·포로생활관·포로폭동체험관 등 주제별 미니 전시관 20여 곳을 만나 볼 수 있다.

유적공원 북측에 있는 평화파크는 이름처럼 평화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공간이다. 특히 평화탐험체험관(2층)은 전쟁 당시 상황을 실감나게 구현했다. 평화롭던 마을에서 격전지로 변한 현장을 지난 뒤, 함선을 타고 포로수용소에 도착하기까지 과정을 몸소 느껴 볼 수 있다. 유적공원 출구 앞에는 옛 P·X와 무도장, 경비대장 집무실과 막사 등 포로수용소 운영 당시 건물 일부가 남아 있다. 두 시간 남짓 공원 전체를 둘러보고 나면 전쟁과 평화, 두 단어의 무게를 실감하게 된다.

전쟁 포로들이 여가활동 시간에 그린 유화. 전쟁 포로들이 여가활동 시간에 그린 유화.
포로수용소 운영 당시 경비대장 집무실과 막사 흔적. 포로수용소 운영 당시 경비대장 집무실과 막사 흔적.
서울 종로구 정독도서관 앞에 자리한 서울교육박물관. 서울 종로구 정독도서관 앞에 자리한 서울교육박물관.

■ 60년 전에도 입시 파동…서울교육박물관

최근 킬러문항 논란이 일면서 새삼 교육이 사회 이슈로 떠올랐다. 언제부턴가 ‘입시’와 동의어가 돼버린 교육. 그 의미와 역사를 찬찬히 짚으며 시야를 넓혀 보는 건 어떨까.

서울 종로구 정독도서관 앞에 자리한 ‘서울교육박물관’은 우리나라 교육의 역사를 한눈에 파악하기 좋은 곳이다. 정독도서관 입구를 따라가다 보면 붉은 벽돌의 고풍스러운 단층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건물의 오랜 역사는 내부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진다. 100년 넘은 지붕의 목조 골격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서울교육박물관은 정독도서관 부설 교육전문박물관으로, 우리나라 중등교육의 발상지인 옛 경성고등보통학교 건물에 들어섰다. 1995년 서울교육사료관으로 문을 열었다가 이듬해 교육전문박물관으로 등록됐고, 2011년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내부 전시실에는 삼국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교육기관과 교육과정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조선시대 관학·사학과 과거제도, 민족저항기와 해방 이후 교육제도와 교육과정 변천사를 통해 우리나라 교육의 역사적 흐름을 따라가 본다.

서울교육박물관의 내부. 지붕의 목재 골조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서울교육박물관의 내부. 지붕의 목재 골조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전시 중인 수많은 학교 배지. 전시 중인 수많은 학교 배지.

전시물 중 물레방아 모양의 ‘중학교 입학 무시험 추첨기’가 특히 인상적이다. 추첨기가 도입된 배경도 흥미롭다. 1964년 서울시 중학교 전기 입학고사에서 자연과 18번 문제 정답으로 ‘무즙’도 인정할 것이냐를 놓고 소위 ‘무즙 파동’이 벌어졌다. 중학교 입시가 과열되면서 1969년 서울·부산을 시작으로 중학교 무시험 진학(평준화)이 도입됐고, 이때 추첨기가 쓰였다. 논란이 됐던 문제의 시험지도 확인할 수 있다. 이밖에 풍금, 학교 배지, 6·25 당시 교과서 등 다양한 전시품이 어르신에겐 추억을, 어린이에겐 호기심을 선사한다.

입구 오른쪽 공간에는 우리나라 최초 관립중학교(현 경기고의 전신) 1회 졸업생이자 독립운동에 헌신한 김호 선생의 일대기를 전시하고 있다. 배움을 국가와 민족을 위해 쓴 선생의 걸음을 따라가며 교육의 가치를 되새겨 본다.

한편, 머지않아 부산에서도 옛 감정초등학교 건물에 1~4층 규모의 (가칭)부산교육역사체험관이 들어설 예정이다. 부산 교육의 역사를 정리한 상설전시뿐만 아니라 배움의 의미를 찾아가는 인터랙티브 체험공간까지 갖춰 학부모와 자녀에게 유익한 시설이 될 것으로 보인다.

6·25전쟁 당시 학교에서 사용했던 교과서. 6·25전쟁 당시 학교에서 사용했던 교과서.
입시 과열로 1969년 중학교 무시험 진학이 도입되면서 사용한 ‘추첨기.’ 입시 과열로 1969년 중학교 무시험 진학이 도입되면서 사용한 ‘추첨기.’
부산 중구 한 상가건물에 위치한 애플컴퓨터박물관 입구. 낡은 계단 벽면에 스티브 잡스를 추모하는 사진이 걸려 있다. 부산 중구 한 상가건물에 위치한 애플컴퓨터박물관 입구. 낡은 계단 벽면에 스티브 잡스를 추모하는 사진이 걸려 있다.

■ AI 기원을 찾아서…애플컴퓨터박물관

올 상반기 주요 키워드를 꼽자면 AI(인공지능)를 빼놓을 수 없다. 챗GPT, 바드 등 생성형 AI 서비스가 상용화하면서 바야흐로 AI 시대가 도래했다. 데이터 학습이 AI 기술의 핵심이란 점에서, 수많은 데이터를 만들어 내는 개인용 컴퓨터(PC)의 등장은 AI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이다.

부산 중구 중앙동 40계단 인근에는 AI를 가능하게 한 PC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애플컴퓨터박물관’이 있다. 오래된 상가건물, 2층으로 향하는 낡은 계단 벽면엔 애플의 아버지 스티브 잡스를 추모하는 사진들이 내걸렸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엄대흠(55) 대표가 손님을 맞는다. 그는 2014년 애플 매킨토시 출시 30주년을 기념해 사무실 공간 4분의 3을 떼어 내 박물관을 열었다. 전시된 컴퓨터마다 엄 대표의 알찬 설명이 더해진다. 명령어 기반의 70년대 애플 컴퓨터와 마우스를 쓰는 윈도 환경의 80년대 매킨토시는 PC의 발전사를 보여 주는 유물이다.

애플컴퓨터박물관 내부. 마우스를 쓰는 윈도 환경 개인용 컴퓨터의 시초인 매킨토시 모델이 다양하게 전시돼 있다. 애플컴퓨터박물관 내부. 마우스를 쓰는 윈도 환경 개인용 컴퓨터의 시초인 매킨토시 모델이 다양하게 전시돼 있다.
매킨토시 컴퓨터로 체험해 볼 수 있는 그림맞히기 게임. 매킨토시 컴퓨터로 체험해 볼 수 있는 그림맞히기 게임.
베이직 언어를 입력해 구현해 낸 그래픽. 베이직 언어를 입력해 구현해 낸 그래픽.

매킨토시 중 1대를 켜 마우스를 조작하자 소리가 흘러나온다. “Hello, I'm macintosh…”(헬로우, 아이 엠 매킨토시…) 컴퓨터가 말을 하다니. 당시로선 혁신적인 기술이다. 수십 년 된 모델도 새 것처럼 작동한다. 베이직 언어를 입력해 그래픽을 구현해 보고, 갤러그·그림맞히기 등 추억의 게임도 해 볼 수 있다.

갤러리처럼 박물관 곳곳에는 사진·그림도 전시 중이다. 애플 초창기 공동 설립자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한 모습과 연단에서 연설하는 사진 등에서 청년 잡스의 꿈과 열정이 느껴진다. 낙화장 김영조 선생이 인두로 그린 그림, 백승영 작가의 펜화 등 잡스 초상화도 만나 볼 수 있다.

애플컴퓨터박물관은 보물창고 같다. 질문이 많을수록 해설은 더욱 풍성해지고, 엄 대표가 안쪽 사무실에서 추가로 제품을 꺼내 보이기도 한다. 내년이면 개관 10주년. 이제는 타 지역 방문객이 더 많을 정도다. 전국적으로 알려지면서 광주디자인비엔날레에 2019년에 이어 올해도 참가하고, 2021년 잡스 10주기 땐 서울에서 추모전을 열기도 했다. 엄 대표는 “주변에선 입장료를 받으라고 하지만 방문객과 이야기를 나누며 교감하는 게 그저 좋다”며 “언젠가는 커뮤니티·카페 공간까지 갖춘 박물관으로 확장하는 게 꿈이다”고 말했다. 관람을 원하는 이들은 홈페이지(www.applemuseum.co.kr)에서 개관·휴관 일정을 확인하고 예약하면 된다.

글·사진=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낙화장 김영조 선생이 인두로 그린 스티브 잡스 초상화. 낙화장 김영조 선생이 인두로 그린 스티브 잡스 초상화.
백승영 작가가 펜으로 그린 나이대별 스티브 잡스 초상화. 백승영 작가가 펜으로 그린 나이대별 스티브 잡스 초상화.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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