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극한 호우
최근 폭염과 폭우가 받고채기하는 것처럼 종잡을 수 없는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언제는 찌는 듯 무덥다가 다음 날엔 양동이로 비를 퍼붓는 듯한 극단의 날씨가 펼쳐진다. 온난화 등으로 인한 이상 기후가 원인이라는 지적은 새삼스럽지도 않다. 중요한 건 이런 일이 이젠 일상이 됐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폭우와 폭염 등이 일상화하면서 이를 표현하는 기상 용어도 이에 따라 점점 강도가 세지고 있다. 기존 용어로는 국민에게 현상에 걸맞은 경각심을 줄 수 없다는 당국의 판단 때문인지, 더 세고 독한(?) 용어가 새로 등장했다. 지난 11일 처음 공식 사용된 ‘극한 호우’가 바로 그것이다.
장대비가 쏟아졌던 서울 일부 지역에 긴급재난문자로 발송된 극한 호우에 대해 많은 국민이 난생처음 들어 보는 기상 용어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까지는 집중호우(豪雨)나 집중폭우(暴雨)라는 말이 주로 쓰였는데, 시간당 강수량이 30㎜일 때 사용된다.
새 용어인 극한 호우는 당연히 이와 ‘급’이 다르다. 집중호우나 집중폭우보다 훨씬 많은 비는 물론 사태의 긴박함까지 담긴 표현이다. ‘극단적으로 많이 내리는 비’ 정도로 풀이할 수 있다. 말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느낌이다. 기상청 규정으로는 시간당 50㎜와 3시간에 90㎜ 기준을 함께 충족하는 비가 내릴 때 극한 호우라고 한다. 이럴 경우 기상청이 직접 긴급재난문자를 발송한다. 극한 호우 긴급문자는 작년 8월 중부지방의 집중호우를 계기로 도입됐고, 실제로 발송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많은 비를 뜻하는 용어로는 호우, 폭우 외에 대우(大雨)나 다우(多雨)도 있고, ‘장대비’라는 순우리말도 있다. 그런데도 기상청은 극한 호우를 선택했다. 아마 이상 기후를 반영하면서 좀 더 센 어감을 주는 용어가 필요했지 싶다. 영어에서 어떤 대상을 강조하기 위해 ‘슈퍼’ 위에 ‘울트라’나 ‘하이퍼’처럼 더 센 용어가 있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앞으로 날씨와 관련해 ‘극한’ 이상의 다른 수식어가 더는 나오지 않기를 바라지만, 알 수는 없는 일이다.
어쨌거나 기상 용어가 갈수록 강하고 독해지는 만큼 이에 대한 재해 대비도 한 차원 높아져야 하는데, 당국의 정책이나 실천은 호언장담과 달리 전혀 강하고 독해지지 않은 것 같아서 걱정이다. 말만 강하고 독하게 한다고 재해 대비가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닐 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