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지적·기습적 폭우 뒤 폭염, ‘도깨비 장마’에 홀린 올여름
장시간 내린 이전 장마와 달리
단시간 강한 비 뿌린 뒤 이동
호우주의보 10분 뒤 바로 경보
11일 해운대·금정 156·51mm
지역 따라 강수량 3배 차이도
게릴라 장마보다 예측 힘들어
올해 장마에는 본격적으로 ‘도깨비 장마’라는 별명이 붙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불렸던 ‘게릴라 장마’보다 더 기습적이고 예측하기 힘들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12일 부산지방기상청에 따르면, 11일 오후 3시 30분 부산에 ‘호우주의보’가 발령됐으나, 불과 10분 뒤인 3시 40분 주의보는 ‘호우경보’로 격상됐다. 이후 오후 5시 30분께 경보는 다시 주의보로 낮춰졌다.
호우주의보 발령이 늦었다는 데엔 별다른 이견이 없다. 이미 이날 오후 3시 전후에 상당한 폭우가 쏟아졌고 곳곳에서 범람이 시작됐기 때문이었다. 호우주의보와 경보 사이 간격이 불과 10분에 불과했다는 것도 그만큼 기상 상황이 급변했다는 것을 뜻한다.
통상 본격적인 폭우가 시작되기 전에 주의보가 발령되고 최소 한두 시간 뒤 경보가 발령되지만, 폭우 특보가 늦어진 것을 두고는 기상청의 역량 부족보다는 이번 폭우의 변칙적 특성에서 원인을 찾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부산지방기상청 내부에서도 “이번 폭우는 매우 갑작스럽게 쏟아져 예측 불가능에 가까운 수준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11일 폭우처럼 기습적이면서 국지적으로 쏟아지는 도깨비 장마는 한반도를 둘러싼 정체전선의 형태와 연관이 있다. 통상적인 장마는 성질이 다른 두 기단이 만나 동서로 길게 띠를 이룬 뒤 남북으로 이동하는 형태로 움직인다. 이 때문에 장마 전선이 한반도 위아래를 이동하며 장시간 꾸준하게 비를 뿌리는 특징이 나타난다.
반면 현재 한반도에는 정체전선상에 저기압이 발달돼 있는데, 기압골 영향까지 결합되면서 폭우가 쏟아지는 형태를 보인다. 기존 장마의 경우 정체전선이 만나는 형태를 바탕으로 어느 정도 기상 상황을 예측할 수 있었다면, 저기압이 전반에 깔린 지금의 형태에서는 예상치 못한 상황이 곳곳에서 벌어질 수 있는 셈이다. 실제로 기상청에 따르면 11일 강우와 관련해 ‘한국형 수치예보 모델(KIM)’, ‘영국 기상청 모델(UM)’, ‘유럽중기예보센터(ECMWF) 모델’ 모두를 적용했지만 강수 집중 구역이 일치하지 않았다.
도깨비 장마의 특징은 국지성이다. 해당 지역의 저기압이나 기압골 영향에 따라 비의 양이 결정되다 보니 좁은 지역마다 비의 양에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11일의 경우 해운대구에 156mm, 부산진구에 108.5mm의 비가 내렸다. 같은 기간 금정구는 51mm, 북구는 76mm의 강수량을 기록했다. 같은 부산이지만 지역에 따라 강수량이 최대 3배 이상 차이가 날 정도로 폭우의 양상은 국지적인 셈이다.
도깨비 장마는 기존 장마와 비교해 비구름대가 짧아 좁은 지역에 단시간 강한 비를 뿌린 뒤 빠르게 이동하는 것도 특징이다. 11일 오후 호우경보가 불과 2시간 만에 주의보로 내려간 것도 이 때문이다. 구름대가 물러간 뒤 폭우가 쏟아졌던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갑자기 폭염이 이어지는 것도 도깨비 장마의 특징이다.
일각에서는 도깨비 장마의 등장을 올여름 예측된 ‘슈퍼 엘니뇨’ 현상과 연관시켜 이해해야 한다고 하지만, 대체로 슈퍼 엘니뇨와 한반도의 장마는 큰 연관성이 없는 것으로 본다. 슈퍼 엘니뇨 역시 수년마다 반복되지만, 과거 발생 시기를 살펴보면 특별한 기상 재해가 보고되지는 않았다.
도깨비 장마와 지구 온난화 또는 이상 기후와의 연관성도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는다. 다만 지구 온난화에 따른 이상 기후 현상이 기후의 불안정성을 가중시켜 기존에 관측되지 않았던 새로운 기상 현상이 늘어나고 있다는 측면에서 간접적인 배경은 될 수 있다고 평가된다.
기상청 관계자는 “지금까지 여름 폭우는 넓은 지역에 형성된 비구름대에 의한 게 아니라 지역적으로 찌르듯이 발생하는 형태”였다며 “국지적이고 기습적인 폭우는 말 그대로 예측하기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김백상 기자 k10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