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갈대 같은 인간
신호철 소설가
‘인간은 자연 가운데서 가장 약한 하나의 갈대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하는 갈대이다.’ 프랑스 사상가 파스칼이 그의 저서 〈팡세〉에 쓴 말이다. 내가 보기에도 갈대는 이리저리 휩쓸리기 일쑤인 인간에게 잘 어울리는 단어다.
인간의 특성을 정의한 지식인은 많다. 데일 카네기라는 작가는 자신의 저서 〈인간관계론〉에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다’라는 말을 썼다. 반면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존재’라 했다. 이 말은 너무나 감정적인 인간이기에 이성적 사고 능력을 잊지 말라는 강조로 해석될 수도 있다.
당연히 사람은 다양하다. 이성적 성향일 수 있으며, 감성이 예민한 이도 많다. 이들 모두가 감정과 이성의 테두리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선을 넘지 않으려 애쓰는 이유는 인간다움을 유지하려는 의지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자아로 발현된 의지야말로 인간의 위대한 특성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의지를 흔드는 비이성적 충동은 어디서 나왔던 말인가. 그 행동이 순수하게 나의 감각과 생각에서 우러나온 것일까?
쇼핑 중에 불현듯 물건 하나를 슬쩍 하고픈 충동이 생기고, 무덤덤했던 이성에게 돌연 친밀감을 느끼는 것이 순전히 내 판단의 결과라 할 수 있을까? 나를 자극하는 또 다른 뭔가가 내 몸 안에 있는 게 아닐까?
사람의 감정과 행동은 내분비물질, 즉 화학물질에 의해 결정된다는 이론이 유행했던 적이 있었다. 실제로 사람은 인체 내에서 분비되는 극소량의 물질로 행복해지거나 만족감을 느낀다. 과학자들은 그 실체를 찾아내려 애를 썼고, 기어코 몇 종의 물질을 찾아냈다. 도파민, 세로토닌, 옥시토신 등등이 그렇다.
사람은 즐거움과 행복, 기쁨이라는 것에 아주 관심이 많은 족속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인체 특정 조직에서 분비되는 물질과 유사한 천연물질을 찾아내고야 만다. 우리는 그것을 마약이라 부른다. 주술, 혹은 고통을 줄이고 우울증, 불면증을 치료하는 용도로 사용되던 마약이 오직 도취만을 위한 용도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대량생산이 가능한 합성마약의 등장과 함께이다.
중증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처방되는 펜타닐에 중독된 사람이 많다는 뉴스가 요란하다. 펜타닐은 흔히 온당치 않은 사람이 취급하였던 합성마약과 차별되는 순수 의료용이었다. 의사의 처방전만 있으면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오남용의 편법이 되었을까.
현재 미국에서는 청장년층 사망 원인 1위가 펜타닐 중독이라는 말이 있다. 멀리 볼 것 없이 우리나라에서도 펜타닐 오남용이 심각하다. 심지어 ‘우리나라 청소년들 10명 중 1명은 펜타닐을 경험했다’라는 기사가 나왔다. 전적으로 믿기 어려운 수치이지만, 마약류 오남용 문제가 걱정스러운 건 사실이다.
마약을 접하게 하는 가장 큰 동기는 무엇일까? 아마도 호기심과 자만심일 것이다. 중독과 부작용의 위험성은 대부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 어떤 느낌인지 딱 한 번만 경험해보고 중단할 수 있는 자신의 의지를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약은 애초부터 인간의 의식을 무너뜨릴 용도로 만들어진 물질이다. 기능 자체가 감각과 정서를 왜곡시키는 물질인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 의지는 마약과의 싸움에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러니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극소량의 화학물질에 지배당하는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인간은 자연 가운데서 가장 약한 하나의 갈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