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균 칼럼] 분열된 악다구니판을 깨야 나라가 산다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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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고대 트로이 국론 나뉘어 패망 자초
구한말 정치 파벌 싸움에 나라 잃어
여야 극심한 정쟁 탓 국력 약화 우려
국내외 비극적 역사 반면교사 돼야
화합 통한 사회 갈등·반목 해결 필요
4대 열강 대응·국익 위해 힘 모아야

트로이 목마는 기만전술의 전형으로 꼽힌다. 기원전 12세기 도시국가 트로이는 스파르타 왕비를 유괴했다는 이유로 침공한 그리스 연합군의 대병력에 맞서 10년이나 버텼지만, 목마 계책에 속아 하루아침에 멸망했다. 트로이는 그리스가 퇴각하는 척하며 정예군 수십 명을 숨겨 성문 앞에 세워 둔 목마를 전리품으로 여겨 성안에 들여놓고 승리에 도취했다가 목마 속 군사의 야간 기습을 받아 함락되고 말았다. 간계나 위선에 대한 경계의 필요성을 시사하는 사건이다.

트로이 목마에는 더욱 중요한 교훈이 될 만한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트로이 사람들이 성밖 목마를 두고 벌인 결론 없는 논쟁이 바로 그것이다. 일부 장로들은 ‘그리스인이 무사히 귀국할 수 있도록 가호를 빌며 아테네 신에게 바친다’란 글이 새겨진 목마를 승전물로 삼아 성내 아테네 신전에 갖다 놓자고 주장했다. 또 다른 이들은 목마를 부숴 내부를 살펴보자며 맞섰다. 군중도 양쪽으로 의견이 엇갈려 대립하는 바람에 결정은 왕의 몫이 됐다. 결국 목마를 안으로 옮기는 큰 실수를 낳게 만든 팽팽한 논란은 트로이가 어이없이 패망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이같이 소모적인 말다툼이 격화돼 국력 약화 등의 낭패로 이어진 사례는 동서고금에 숱하다. 우리도 구한말 지도층과 지식인들이 친일파와 친청파, 친러파로 나뉘어 극심한 갈등을 겪다 맥없이 나라를 잃은 뼈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트로이와 우리나라 역사는 적의 야욕 앞에서 국론이 분열될 경우 망국으로까지 연결될 수 있음을 잘 보여 준다. 일제강점기 민족 지도자인 도산 안창호 선생은 “국권이 있고 병력도 충분하더라도 국민이 분열하면 패한다”고 지적했을 정도다.

도산 선생의 가르침은 지금 한국에서 여전히 유효하다. 세계 패권전쟁을 벌이며 자국 편에 서기를 강요하는 미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 러시아 4개 강대국에 끼어 줄타기 외교를 펼쳐야 하는 엄중한 시기여서다. 북한의 핵위협마저 고조되고 있다. 위기 상황에 슬기롭게 대처하면서 국익을 챙기는 데는 단합된 힘이 필수적이다. 이는 서방 세력과 러시아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으로 혼란에 빠진 결과, 러시아의 침략으로 전쟁터가 된 우크라이나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국론 분열로 국력이 분산돼 열강의 요구나 북한 도발에 쉬 휘둘려선 안 될 일이다.

국제 정세가 이런데도 국내적으로는 집안싸움에 여념이 없어 매우 안타깝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이 당리당략을 앞세운 여야 간 끝 모를 정쟁을 지켜보자니 착잡한 마음뿐이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일본 후쿠시마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 서울~경기도 양평 고속도로 노선 문제 등 불거지는 사안마다 의견 충돌을 빚으며 대립하기 일쑤다. 밀리면 끝장이라는 듯 상대방 공격에 혈안이 돼 있다. 이 때문에 국회가 처리해야 할 법안은 산더미처럼 쌓였으며 민생 해결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내년 4·10 총선이 다가오자 여야는 서로 지지층을 결집할 의도로 험악한 막말과 욕설을 서슴지 않으며 적대적인 강 대 강 대치로 치닫는다. 진실과 객관적 사고보다는 자기 진영이면 무조건 편들고 다른 편이면 마구 배척하는 걸 중시한다.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민심을 호도함으로써 정국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술수일 테다. 타협과 양보를 바탕으로 한 협치의 실종으로 정치가 황폐화된 이유다. 정치권의 편가르기와 갈라치기 탓에 지지자들이 믿고 싶은 것만 사실로 여기는 풍조가 만연하고, 남녀·세대·계층·직종 간 갈등도 깊어져 문제가 심각하다. 2017년 삼성경제연구소는 사회적 갈등 관리와 해소에 연간 최대 246조 원이 쓰인다고 밝혔다. 갈수록 볼썽사나운 악다구니판으로 몸살을 앓는 현실을 고려하면 비용 낭비가 엄청나게 늘어났지 싶다.

공멸이 우려되는 분열과 갈등을 이대로 방치하는 건 국가와 미래를 망치자는 것과 다름없다. 나라를 살리려면 극단의 진보·보수로 양분된 구도를 깨 국론을 추스르는 일이 절실하다. 나만 옳다는 생각과 집단적 편향성으로 갈라지고 반목하는 대신 의견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다른 견해를 존중하는 자세가 정치인을 포함한 전 국민에 요구된다. 매사에 이러한 마음가짐과 자유로운 토론을 통해 가장 실효적이고 시의적절한 합의나 방안을 도출하는 게 바람직하다.

이제는 모두가 분열을 접고 통합 노력을 우선시해야 마땅하다. 힘을 모으고 한목소리를 내며 국력과 경제력을 대폭 키워 강국이 된다면 미·중·일·러조차 우릴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것이다. 되레 환심을 사며 지지와 협조를 얻으려고 한국 눈치를 볼 것이다. 기존 고압적인 외교 자세를 바꿔 먼저 선물 보따리를 싸들고 찾아올 게 분명하다. 위풍당당하고 국민의 삶이 안정된 국가 건설을 위해 화합과 연대를 적극 도모하자. 국론 분열상에 따른 국내외 비극적 역사를 거울삼아 우리 현실을 제대로 성찰하고 직시한다면 그렇게 하는 건 당연하다.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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