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곳 물길 막힌 빗물받이…수마에 길 터주는 초대장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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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취재팀 긴급 점검

중앙동 20개 중 15개 위 ‘덮개’
서면 골목 도심 상황 대동소이
악취 차단판도 파손 방치 많아
관리 안 돼 침수 막기에 역부족

13일 부산 중구 부평동 일대의 빗물받이가 덮개로 막혀 있다. 김종진 기자 13일 부산 중구 부평동 일대의 빗물받이가 덮개로 막혀 있다. 김종진 기자

기습적이고 국지적인 폭우가 빈번해지면서 도시의 기초 재난 대응력이 강조되고 있다. 침수 발생 시기와 장소를 예측하기 어려워진 만큼, 빗물받이와 투수블럭 등 도시 전역에 퍼져있는 기본적인 침수 예방 설비가 도시형 침수 피해를 줄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13일 오전 10시께 부산 중구 중앙동 3가의 한 골목. 40여m 골목길 양옆으로 3~4m마다 빗물받이가 설치돼 있다. 하지만 빗물받이 20개 가운데 15개가 검은색 고무 덮개로 덮여 있다. 빗물받이는 도로에 떨어진 빗물을 모아 지하 우수관으로 보내는 일종의 출입구다. 고무 덮개가 통로를 막으면, 폭우 시 빠지지 못한 빗물이 도로에 고이면서 침수 원인이 된다.

불과 이틀 전 기습 폭우로 부산에서 인명피해가 났음에도 덮개가 덮여 있는 것을 고려하면, 이들 빗물받이에는 늘 덮개가 덮여 있던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덮개가 없는 빗물받이들도 안에 담배꽁초와 쓰레기, 낙엽 등이 가득해 빗물이 빠져나가기 힘든 상태였다. 서구 아미동, 부산진구 서면 등 이날 취재진이 찾은 부산 골목길 대부분이 비슷한 상황이었다.

중앙동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A(54) 씨는 “여름이 되면 고인 물과 쓰레기로 인해 악취가 나니, 가게 앞 빗물받이를 덮어둘 수밖에 없다”며 “폭우 때가 걱정은 되지만, 당장 장사에 지장을 받으니 일단은 덮어 둔다”고 말했다.

국가하수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부산에는 12만 2015개에 이르는 빗물받이가 있다. 도심 전역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기초적인 침수 대응시설인 셈이다. 하지만 흔하다보니 그 중요성이 제대로 인식되지 않은 채 담배꽁초 등을 버리는 ‘거리의 쓰레기통’ 취급을 받기 일쑤다.

일부 빗물받이 내부에는 평상시에 닫혀 있어 냄새가 올라가는 것을 막고 비가 오면 빗물 무게로 자동으로 열리는 ‘악취 차단판’이 설치돼 있는데, 취재 결과 차단판 대다수가 부서져 제 기능을 상실한 것으로 드러났다. 차단판 손상 여부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지자체조차 드물었다. 빗물받이 개수가 너무 많다 보니 지자체 관리가 쉽지 않은 탓이다. 부산진구의 경우 빗물받이 8656개를 관리하는 인원은 불과 26명. 일일이 현장을 돌며 빗물받이 상태를 확인하고 덮개 등을 제거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한 구청 관계자는 “빗물받이를 담당하는 부서 인력만으로는 관리가 쉽지 않고, 시정 조치를 한다고 해도 그때 뿐이어서 빗물받이가 금세 쓰레기통이 된 걸 발견할 때마다 허탈하다”고 전했다.

최근에는 폭우 시 거리의 빗물을 빠르게 흡수하기 위한 대응책으로 ‘투수블록’이 쓰이고 있다. 빗물이 블록 사이로 들어가 땅으로 흡수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으로, 설치 비용도 일반 보도블록과 큰 차이가 없다. 이 때문에 BRT 일부 구간 등 새로 보도블록을 설치할 때 자주 이용되고 있다.

하지만 지하에 배선로 등의 설비가 있을 경우 투수블록 설치가 쉽지 않다. 특히 투수블록 설치 여부가 각 지자체 단위로 결정되고 있어, 부산시 차원에서 투수블록 권장하고 지원해 설치율을 높여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동아대 이정재 건축공학과 교수는 “국립재난안전연구원 실험에서 시간당 100mm의 집중 호우 시 빗물받이에 담배꽁초 등 쓰레기가 들어차 있는 경우 역류현상이 발생해 침수가 3배가량 빠르게 진행됐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기초 수해 대응책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빗물 흡수율이 높은 투수 보도블럭처럼 기습적인 폭우에 대응력을 높일 수 있는 대안들이 필요한 시점이다”고 조언했다.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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