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 뷰] 온 국민이 ‘만세 부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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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승 홍익대 조선공학과 교수

산업화 시대, 굵직한 사업 잇단 성공
최근 국민 환호할 큰 프로젝트 없어
항공우주·해양 등서 새 활력 찾아야

1973년 6월 9일 경북 포항 영일만의 포항제철소 고로에서 쇳물이 처음 흘러나오자, 만세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듬해 4월 열린 포항제철소 착공식에서 박태준 사장은 “민족의 숙원인 제철소 건설에 실패하면 이는 민족사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것이니 죽을 각오로 임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용광로를 직접 본 적도 없는 기술자들이 불굴의 희생정신으로 헌신한 결과, 포항제철소는 성공적으로 준공될 수 있었다.

조선 사업은 꿈도 꾸지 못하던 1970년대, 현대중공업의 정주영 회장은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짜리 지폐로 영국에서 차관을 도입하는 데 성공했다. 2년 뒤 3월 울산 미포에서 열린 공장 기공식에서 정 회장은 “세계 조선사상 전례가 없는 최단 공기, 최소 비용으로 최첨단 초대형 조선소와 2척의 유조선을 동시에 건설하겠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그리고 다시 2년이 흐른 1974년 6월 28일, 이곳에선 울산조선소 준공식 겸 초대형 선박 1, 2호 명명식이 거행됐다.


1970~80년대 산업화 시대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을 이뤄 내며 ‘만세 부를 일’이 많을 때였다. 이는 6·25전쟁 후 빈곤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국민의 염원과 정치 지도자의 비전이 어우러져 함께 달성한 결과였다.

우리 경제는 올해 들어 1.4%의 저성장이 예견된다. 이를 벗어나려면 사고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예전처럼 만세를 부를 만한 숙원 사업의 집중과 성공이 요구된다. 최근 만세 부를 만한 일은 어떤 것이 있었을까. 작년 7월 KF-21 전투기의 비행 성공과 올해 5월 한국형 우주발사체 누리호(KSLV-Ⅱ)의 발사 성공이 손꼽힌다. 두 프로젝트 모두 개발자와 기관의 노력이 있었음은 자명하다. 다만, 예전 포항제철이나 현대중공업의 성공처럼 국민 단합을 끌어내고, 국가경제에 획기적 전환점이 되었는지에 대해선 다소 다른 평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국제 정세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패권 갈등의 심화 등으로 더욱 복잡해지면서 신냉전 시대가 도래하는 듯하다. 우리나라로서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가치가 높아지는 계기가 된다. 여기에 더해 반도체, 배터리 등 4차 산업혁명기를 맞아 ‘경제 지정학적’ 이점도 우리에겐 기회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안(IRA)’을 최대한 활용한다면 국내 제조업 부활의 도약대가 되어 국민 1인당 국내총생산(GDP) 5만 달러도 기대해 볼 수 있다. 먼저 4차 산업혁명 기술로 산업 현장을 자동화하여 제조업 경쟁력을 높이고, 중간재를 넘어 최종 브랜드 명품을 만들어 세계 시장점유율을 높여야 한다. 또 우주항공산업을 과감히 육성하고, 해상풍력을 적극적으로 개발해 새로운 해양경제를 창출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주항공산업은 고부가가치 종합 산업으로, 그 파급 효과는 기계, 전기·전자 등 다양한 산업으로 확장된다. 우주항공산업 선도국인 미국과 기술 협력의 폭을 넓히고, 이를 통해 청년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해상풍력의 개발은 단순히 에너지 수입의 국산화에만 그 효과가 그치지 않는다. 미래 해양 도시개발의 인프라를 확보하는 중요한 산업이다. 또한 먼바다에서 양식·양어를 가능하게 하여 미래 먹거리 확보의 중요한 매개가 된다.

농업에도 적극적으로 투자해 네덜란드와 같은 농업 강국을 지향하는 것도 좋다. 전 세계 채소·화훼 수출 세계 1위(2015년 네덜란드 경제부 발표)인 네덜란드는 적은 국토 면적과 간척지라는 열악한 조건을 기술력으로 극복하며 농업 강국이 됐다. 수산업은 1인당 GDP가 7만 달러가 넘는 노르웨이가 벤치마킹 대상이 될 수 있다. 고급 양식 기술뿐 아니라 지속 가능한 어업을 위한 기술과 동물권 보호에도 선도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는 우주항공산업, 해상풍력, 고도화된 농·수산업 등에서 세계에 도전할 준비가 되었는가. 모두 정치지도자의 비전, 대규모 재정 투자, 그리고 국민의 결집된 열의가 필요한 분야다.

과거 포항제철과 현대중공업의 성공 신화는 예산·기술력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굳센 의지가 만들었다. 지금은 상대적으로 기술과 자본은 있는데, 국민의 에너지를 모을 수 있는 숙원 사업이 등장하지 않은 것이 아닐까 하는 아쉬움이 크다. 만세 부를 일을 국민과 함께 만들어야 한다. 1%의 저성장에 직면한 한국 경제를 되돌릴 시간이 우리에게 많지 않다. 지금 과감히 도전하지 않으면, 다음 세대의 장래는 밝지 않을 것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로 되돌아가 현대중공업 정주영 회장에게 문제 해결을 위한 조언을 구한다면 이런 말을 하지 않을까. “걱정하지 마시오. 우리 한국인은 작심만 하면 어떤 난관도 돌파할 수 있는 민족이오”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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