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지하차도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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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 입체적으로 솟은 고가도로는 한국 경제 성장의 상징물이었다. 1971년 완공되고 2003년 철거된 서울 삼일고가교와 청계고가도로, 1969년 건립돼 2019년 헐린 부산 자성고가교가 대표적이다. 고가도로는 1970~80년대 급증한 교통량에 대응해 한정된 도로를 효율적으로 이용할 목적에서 대도시 곳곳에 들어섰다. 한때 국가 발전과 토목기술 역량을 과시하는 수단이 됐다. 이젠 도시 경관을 망치고 주변 상권 발전을 저해한다고 인식돼 산악 지형 말고는 웬만하면 건설되지 않는다.

고가도로와 달리 땅 아래로 자동차가 다니도록 만든 기반시설이 지하차도다. 초기에 한 지역을 단절하는 철로와 고속도로 밑에 소형 터널을 뚫어 양분된 곳을 연결하는 시설이 많았다. 1965년 부산역 인근에 설치된 초량2지하차도, 이듬해 근처에 건설된 초량1지하차도가 그런 경우다. 전자는 부산 최초의 지하차도다. 두 시설은 경부선에 가로막힌 중앙대로와 충장대로를 이어 주며 시민들에게 시간 단축이란 편의를 안겼다.

지하차도는 도시와 국토 개발 과정에서 혼잡한 교차로와 교통체증 구간에 적절한 시설물로 인기였다. 도로를 확장할 필요 없이 지하를 파면 되고 차량이 신호를 받지 않고 바로 통과할 수 있어서다. 1990년대부터 증가한 지하차도는 부산에 50곳이 넘고 전국적으로 930여 곳에 달한다. 지금도 전국에서 병목 해소, 우회로 확충, 위험한 건널목 폐지 등을 이유로 크고 작은 지하차도 개설 민원이 잇따른다. 근래 교통난 완화를 위해 신설된 지하차도는 길이가 크게 늘어나고 폭도 넓어졌다. 지난해 8월 부산 전포동~문현동 436m 구간에 왕복 4차로로 개통한 문전지하차도가 그렇다. 부산은 장거리 지하차도인 대심도 2곳 건설도 추진되고 있다.

문제는 지면보다 낮은 지하차도가 집중호우 시 침수에 취약하다는 점. 2014년 부산 우장춘로 지하차도에서 폭우로 불어난 물에 승용차가 빠져 2명이 사망했다. 2020년 초량1지하차도에서도 시간당 80㎜의 ‘비폭탄’에 차량 7대가 침수돼 3명이 숨졌다. 지난 15일 충북 청주시 궁평2지하차도 차량 16대 침수사고로 14명이 사망한 참사가 발생했다. 모두 출입 통제를 제때 하지 못한 관리기관의 안전불감증이 빚은 인재다. 지하차도 증가와 대형화 추세 속에서 명확한 관리자 지정과 과하다 싶을 정도의 선제적이고 철저한 안전관리가 요구된다. 강우의 빈도와 강도가 높아지는 걸 감안해 배수시설 용량 확대, 감시·통제 장비 보강 등 안전시설 강화도 시급하다.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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