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굣길 사고로 딸 잃은 아버지 “우리 가족 인생은 끝났다”
숨진 예서 양 아버지 법정 진술
눈물로 지새우며 고통 속 나날
피고인 뒷짐 진 CCTV에 울분
사고 책임자 처벌 강력히 요구
부산 영도구 어린이보호구역에서 하역작업 중 떨어진 화물에 깔려 초등학생이 숨진 참사(부산일보 5월 1일 자 1면 등 보도)와 관련해 유가족이 증인으로 법정에 출석했다. 유가족은 하루아침에 생때같은 막내딸을 잃고 고통 속에 나날을 보내고 있다며 사고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
부산지법 형사17단독 이용관 판사는 17일 오전 10시 40분 업무상 과실치사상 등 혐의로 기소된 공장 대표 A 씨와 공장 직원 3명에 대한 2차 공판을 열었다.
이날 참사로 숨진 황예서 양의 아버지 황 모 씨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앞선 공판에서 양형 증인으로 진술권을 행사하고 싶다는 유족 측의 의사를 검찰이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통상 양형 증인의 증언은 재판에서 피고인의 형벌 정도를 정할 때 반영된다.
참사가 발생한 지난 4월에 비해 수척해진 모습으로 법정에 선 황 씨는 평범한 한 가족의 일상이 무너졌다고 호소했다. 참사 당시를 묻는 검찰 측 질문에 그는 “지금도 꿈을 꾸면 (화물이 딸을 덮치는)그 장면이 떠오른다”며 “제 의지와 상관없이 계속해서 떠올라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어 “아내도 마찬가지다. 매일 눈물로 지새운다”며 “사실상 우리 가족의 인생은 끝난 셈”이라며 흐느꼈다.
참사 당일 피고인들이 보여줬던 태도도 도마 위에 올랐다. 그는 “참사 당일의 CCTV를 봤더니, 참사 직후 공장 직원들이 뒷짐을 지고 걷는 모습이 나왔다”며 “사람을 다치게 하고서 어떻게 뒷짐을 질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울분을 토했다.
황 씨는 이날 몇 번이나 말을 멈췄다. 영영 돌아오지 않는 딸 생각에 그의 어깨가 들썩일 때마다 방청석 곳곳에서 흐느낌이 터졌다. 피고인들의 형사 처벌 의사를 묻는 검찰 측 질문에 그는 단호하게 “처벌을 원한다”고 답했다.
재판부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묻자, 황 씨는 “오늘은 제헌절”이라고 입을 뗐다. 그는 “만약 예서가 살아 있다면 오늘 학교에서 제헌절이 무엇인지를 배워서 엄마에게 설명해 주며 자랑했을 것”이라며 “예서 없이 살아가는 게 너무 힘들다. 제가 대신 무기징역, 사형을 받아도 좋다. 제발 예서를 살려 달라”고 오열했다.
피고인들은 이날 공판에서도 검찰 측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했다. 이에 따라 재판부도 조만간 1심 선고를 내릴 것으로 보인다. 다음 기일인 다음 달 21일에는 참사 당시 다친 초등학생의 학부모가 증인으로 나올 예정이다.
황 모 씨는 재판이 끝난 뒤 〈부산일보〉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이번 참사를 계기로 재발 방지 대책이 절실하다고 전했다. 그는 “이번 참사는 이렇게 끝나겠지만 다른 희생자가 나와서는 안 된다”며 “이미 지적이 나온 것처럼 안전담장 보강, 어린이보호구역 내 CCTV 설치 등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한 지자체, 경찰의 의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A 씨는 지난 4월 28일 오전 영도구의 한 초등학교 인근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지게차를 이용해 트레일러에 실린 무게 1.7t의 어망제조용 섬유 롤을 하역하다 놓쳐 초등학생 1명을 숨지게 하고, 학부모 등 4명을 다치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공장 직원 3명은 지게차 작업을 할 때 안전사고 예방에 필요한 작업계획서를 작성하지 않았고, 교통 흐름 등을 통제할 신호수를 배치하지 않은 혐의 등을 받는다.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