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사건에 대한 비장하고 애통한 진혼곡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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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우다/현기영

1943~1948년 제주도 배경 소설
청년들 사로잡은 열정 정체 탐구
마지막 장면의 비극 속 아름다움
“어떤 절망에도 인생 살 만한 가치”

<제주도우다>를 낸 현기영 소설가는 “그 어떤 비극, 절망이 있어도 새 생명은 솟아난다는 희망을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창비 주최의 기자간담회 모습. 창비 제공 <제주도우다>를 낸 현기영 소설가는 “그 어떤 비극, 절망이 있어도 새 생명은 솟아난다는 희망을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창비 주최의 기자간담회 모습. 창비 제공
<제주도우다>를 낸 현기영 소설가는 “그 어떤 비극, 절망이 있어도 새 생명은 솟아난다는 희망을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창비 주최의 기자간담회 모습. 창비 제공 <제주도우다>를 낸 현기영 소설가는 “그 어떤 비극, 절망이 있어도 새 생명은 솟아난다는 희망을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창비 주최의 기자간담회 모습. 창비 제공
<제주도우다>를 낸 현기영 소설가는 “그 어떤 비극, 절망이 있어도 새 생명은 솟아난다는 희망을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창비 주최의 기자간담회 모습. 창비 제공 <제주도우다>를 낸 현기영 소설가는 “그 어떤 비극, 절망이 있어도 새 생명은 솟아난다는 희망을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창비 주최의 기자간담회 모습. 창비 제공

소설가 현기영의 장편소설 <제주도우다>(전 3권)는 제주 4·3 사건을 전면화시켜 온전히 복원하고 있다. ‘제주도우다’는 ‘제주도입니다’ ‘제주도외다’ ‘제주도이다’라는 뜻의 제주도 말이다. 여기서 ‘제주도’는 3만 명의 애절한 목숨이 깃들어 있는 역사적 단어다. 소설에서 “우리는 북조선도, 남조선도 아니고 제주도다”라는 대사가 나온다. 작가는 역사적 제주도에 “너무도 낯선 삶과 죽음의 비경”이 있다고 했다. 소설은 1943∼1948년 제주를 배경으로 한다. 작가는 “청년들을 사로잡았던 열정의 정체는 무엇이고, 어떻게 그들이 역사의 소용돌이 속으로 휩쓸려 들어갔는지, 삶과 죽음은 무엇이고 인간은 또 무엇인지를 이 소설에서 탐구하고 싶었다”고 했다.

소설은 비장하고 애통한 죽음의 진혼곡으로 읽힌다. 3만 명 하나하나의 목숨을 불러낼 수는 없지만 그 죽음을 가능한 한 개별적인 아픔으로 불러내고 있다. 특히 3권의 서술에서 처참한 죽음과 압도하는 비극은 숨 막힐 지경이다. 토벌대 상부의 명령은 ‘모조리 죽이고, 모조리 불태워라! 노인 여자 아이 할 것 없이 다 죽여라. 목숨 달린 것들은 다 죽여라!’였다. 작가는 “그 핏빛의 생생한 묘사를 자제하려 했다”고 했으나 그 끔직함을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만큼 참혹한 대학살이 벌어진 것이었다.

‘시아버지가 뱃속에 아이가 있다며 며느리를 살려달라 했으나 총탄은 며느리를 향해 날아갔고, 틀림없이 폭도가 됐을 거라며 젊은 아들을 지닌 죄로 십여 명의 늙은 아비들이 총살당했다. 산에 들어간 큰아들 때문에 곧 처형당할 두 손주를 차마 볼 수 없다며 노파는 경찰에 항의하기 위해 지서 옆 오동나무에 목매달아 죽었다. 육지에 물질을 가기 위해 도장 찍은 서류가 여맹조직 명단이라는 살생부로 둔갑해 해녀들이 총살당하고….’

토벌대 중에 ‘매일 한 명이라도 죽이지 않으면 밥맛이 없다’고 떠벌리는 자도 있었고 ‘사람 죽이는 거 이젠 신물 난다, 아주 신물 나!’라고 진저리를 치는 자도 있었다. 무자비한 도륙의 충격 때문에 총기 자살하는 토벌대원도 나오고, 집단 탈영해 입산한 토벌대 41명 중 20명이 체포돼 총살당하기도 한다.

이런 사실들은 1948년 ‘아름다운 섬’ 제주도에서 실제 일어났던 일이다. 1948년 8월 ‘대한민국’ 합법 정부가 들어섰다. 그 전 미군정 통치 아래서 신탁, 단일정부 수립, 총선 등의 정치적 과정이 있었고, 그 속에서 충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일제 식민지에서 해방된 한반도 주민들은 스스로 새로운 체제를 갈망하는 게 너무나 당연했다는 것이다. 그 갈망이 무자비한 진압과 살상으로 꺾였던 것이다. 1948년 하반기, 4~5일간 집중된 초토화 작전으로 한라산 중산간 마을 130개, 1만 5000채 집이 소각됐다. 목초 베는 장낫을 들고 있다고 청년을 죽이고 대드는 아버지를 죽이고 울부짖는 어머니도 총살하고, 전신주에 묶여 총살당하는 아버지 앞에 통곡하는 소리가 듣기 싫다며 아들과 어머니를 사살하고….

애초에 남북분단에 반대하며 혁명을 위해 산에 들어간 이들은 300명가량, 그들이 지닌 무기는 항복한 일본군들이 바다에 버린 ‘99식 장총’ 고작 30자루 정도뿐이었다. 거기서 시작해 3만 명이, 아니 그 이상이 살육당한 것이었다. 이북에서 내려온 우익단체 서북청년회, 대동청년단은 ‘우리가 법이다. 우리가 빨갱이라면 빨갱이다’라며 숱한 이들을 처형했다. 조병옥, 송요찬이 폭압적 토벌을 진두지휘했다. 노골적인 학살이었다. 조병옥으로부터 강경 무력 진압을 명령 받은 박진경은 “제주도민 30만 명이 희생되더라도 무방하다. 제주 백성이 아니라도 나라가 선다”고 했다.

소설에서는 참혹한 참사만 나오는 건 아니다. 젊은이들의 열정 연애 사랑 이야기, 제주도 신화와 약사가 나온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비극 속에서도 아름답다. 동굴에 피해 있던 많은 사람들이 잡혀간 뒤 마지막까지 남은 둘은 고통도 욕망도 없는 텅빈 공허 속으로, 죽음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있다. 하나가 말한다. “여기는 우리 둘의 합장묘야. 아니 무덤이 아니라 우리는 대지의 따뜻한 자궁 속에 들어와 있는 거야. 아아, 따뜻하고 아늑하구나! 우리는 죽지만 다시 태어날 거야. 대지의 자궁은 죽음 속에서 새 생명을 잉태하니까. 그 자궁 속에서 새 생명들은 솟아나 대지 위에 다시 번성할 거야.” 작가는 “어떠한 비극, 어떠한 절망 속에서도 인생은 아름답고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확신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고 했다. 현기영 지음/창비/전 3권, 360~380쪽/각권 1만 7000원.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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