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 근절, 처벌 강화·학폭위 기능 재정립 ‘난제’ 풀어야
대입 반영 불구 경남 발생 증가
가해자 조치 미흡·소송 우려도
교육청 심의 신뢰·공정성 의문
사후 관리 프로그램도 회의적
학부모·학교 “보완책 수반돼야”
정부는 지난 4월 대학입시에 학교폭력 이력을 의무 반영하겠다고 밝히며 학폭 처벌 강화를 예고했다. 이후 3개월이 지났지만, 교육 현장은 여전히 학폭에 골머리를 앓는다. 일각에서는 학폭 가해자에 대한 처벌 강화는 물론 제 역할 못하는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 기능 재정립과 보완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실제 교육청에 접수되는 학폭 발생 건수와 학폭위 조치 건수는 느는 추세다. 경남도교육청에 따르면 지난해 도내 학교폭력 발생 건수는 3799건으로 2년 전 2233건보다 1566건 늘었다. 지난해 학폭위 조치 건수도 1365건으로 2년 전 780건 대비 585건 증가했다.
이 같은 현상은 경남뿐만 아니라 다른 시도도 비슷하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해 지난 4월 정부가 발표한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에는 2026학년도 대학 전형에 학폭 조치사항을 의무반영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를 두고 교육계와 학부모, 학생 등 대부분은 당연한 조치라며 반기는 분위기다.
고등학생 자녀를 둔 한 학부모는 “학폭으로 대학 진학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하면 경각심을 더 가지지 않을까 싶다”며 “대학별로 반영률은 다르겠지만 이를 계기로 제도도 강화될 거라고 예상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에 앞서 학폭위에 대한 낮은 신뢰도와 공정성 논란 해결이 우선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당초 학교 소관이었던 학폭위 심의는 2020년 3월 교육청으로 이관됐다. 비슷한 사안에 학교마다 조치가 천차만별이라는 게 이유였으나, 이관 후에도 인식은 달라지지 않았다. 학폭위 조치가 실효성 있게 이뤄지지 않아 오히려 학교 당국과 가해자에게 면죄부만 준다는 비판도 끊이질 않는다.
지난 10일 경남 창원시 한 고교에서 선배들로부터 학교폭력을 당한 신입생이 결국 전학했다. 피해 학생은 지난 3~5월 구타와 가래침·소변을 맞는 등 상습적인 가혹행위를 당한 것으로 파악됐으나 학폭위는 가해 학생 4명에게 각각 6~16일 출석정지 등의 처벌을 내렸다.
경남 김해시의 중학교에서는 운동부 선후배 간 성폭력 사건이 발생해 경찰이 지난 5월 가해 학생을 검찰에 불구속 송치했다. 경찰에서 혐의가 인정됐으나 가해 학생은 학폭위가 열리기 전 고교 진학을 이유로 전학하는 바람에 학폭위의 ‘강제 전학’ 조치 대상에서 벗어났다.
지난 5월에는 집단 따돌림에 스트레스를 받은 초등생이 안면마비로 입원하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학폭위 참석 요청서와 조치결정 통보서에는 피해 학생이 가해 학생과 다툰 것처럼 적혀 있었다. 가해 학생은 이후에도 SNS를 이용해 피해 학생을 또 괴롭힌 것으로 나타났다.
현직 교사 A 씨는 “현장에서는 거의 모두 쌍방이다. 가해 학생 부모는 나름의 이유와 정황을 들며 어떤 방식으로든 쌍방으로 만들려고 한다. 피해자가 가해자로 둔갑할 때도 있다”며 “종종 법적 다툼으로 번지기도 하고 강제 전학 조치 전 자진 전학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학폭위 조치는 1호 서면사과, 2호 접촉·협박·보복행위 금지, 3호 교내 봉사, 4호 사회봉사, 5호 특별교육·심리치료, 6호 출석정지, 7호 학급교체, 8호 전학, 9호 퇴학으로 구분된다. 심각성, 반복성, 지속성, 반성 정도, 화해 정도를 점수로 매겨 학폭위가 결정한다.
김해에 거주하는 한 학부모는 “아이가 학폭을 경험해 학폭위 심의를 받은 적이 있다. 학폭위 조치가 너무 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학교와 교육청이 은폐·축소한다는 생각이 들어 법적 대응을 고민하기도 했다. 학폭위 이후 아이의 학교생활도 걱정이 됐다”고 토로했다.
이 학부모는 또 “학폭 이력이 대입에 반영되면 법적 분쟁이 많이 발생할 것”이라며 “소송에 따른 시간 끌기를 막기 위한 장치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교육계에서는 학폭 해결 방식이 기존의 사건 처리 위주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고등학교 교사 B 씨는 “학폭위에 대해 회의적이다. 법령에만 맞춰져 있어 교사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없다”며 “학폭은 발생 이후 관리가 훨씬 중요하다. 교사가 학생들의 마음을 만져줄 수 있도록 재량권을 줘야 한다. 전문가가 만든 프로그램도 도입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경민 기자 mi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