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공개공지와 건축문화
이종민 종합건축사사무소 효원 대표
개인 건축에 대한 공적 의식
건축이 문화가 되는 시작점
개별 관점 머무는 건축 평가
공리적 관점 먼저 논의돼야
초량동 아모레퍼시픽 사옥
공개공지에 대한 모범 사례
부산시는 건축물 내의 노후화된 공개공지에 대한 새단장(리모델링) 공사비를 지원하는 소위 ‘공개공지 활성화 지원 시범사업’을 올해 처음으로 추진한다고 한다. 공개공지란 규모 이상의 건축을 하려면, 일정 면적의 공지를 공적으로 개방해야 한다는 건축법의 용어이다. 사적인 건축에서 공적 공간을 확보하는 수단이다. 이는 개인의 건축에 조경면적을 의무화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개별의 건축에서 외부 공간(outdoor space)을 강제함으로써 작은 공간들을 모아 도시의 질을 높이자는 취지이다. 자칫 사유권의 침해일 수도 있으므로, 완화 장치로 법적 용적률 상향과 같은 인센티브를 주기도 한다.
하지만, 실상은 취지에 못 미치는 효과를 내고 있다. 나의 소유로 되어있는 공간은 여전히 나의 것이며, 불특정 다수인이 드나드는 것이 건축주로서는 불편하다. 그러니 정성 들여 관리할 리가 없다. 하물며 교묘하게 영업을 위한 공간으로 탈바꿈되기도 한다. 개인 소유의 공간에 강제하는 공적인 개념이란 여전히 미성숙한 시민의식이다.
공(公)적인 거리에 대한 사(私)적인 집의 태도란 어떤 것인가? 건축이 문화로 서려는 데에 대한 첫걸음과도 같은 질문이다. 모여서 도시와 환경을 이루고, 하물며 자연과도 어울려야 하는 개별의 건축은 처음부터 공적인 물건이었기에 그렇다.
사유물이 공적인 장치로 예속됨에 대한 제어 장치가 건축법에 있다. 건폐율, 용적률, 건축선 후퇴, 공개공지의 제공 등이 이에 속한다. 즉 개인적 욕심을 무던히 정제하라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법의 구속에 따라 만들어진 건축과 제공된 공적인 공간의 대부분은 여전히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한다. 공공건물의 경우에는 공론이 생기지만 개인의 건축일 경우에는 법규만으로는 역부족이다. 그럼에도 그 이상을 이루어 가는 것이 공적 의식의 진보이며, 그때부터 건축은 문화가 된다.
다른 말로, 문화적이라 인식될 수 있는 것은 참된 인식에서 발로하여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행위의 결과일 때에만 가능하다는 이야기이다. 당대에 건축이 문화로 설 수 있음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여타의 예술은 개별적이므로 구상단계에서부터 이미 문화적이다. 하지만 건축은 그러하기가 쉽지 않다. 완성 후에 주변과 어울려야 하나의 문화를 이룰 수 있으니 말이다.
여전히 건축에 대한 평가는 하나의 건축이 가지는 목적과 역할과 영향에 대하여 개적인 관점으로 평가된다. 지극히 이기적이며 편협하다. 그러므로 건축을 문화로 규정하려면, 결국 건축이 대중에게 주는 보편적이고 공리적인 관점에서 먼저 논의되어야 함이 더욱 타당하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것은 문화를 이루어 가는 많은 건축가의 책무이기도 하다.
건축가 김종규가 설계한 아모레퍼시픽 사옥(초량동 소재)에는 여타의 건물과 다른 공지가 보행자들에게 공개되어 있다. 공개공지에 건물의 기둥이 없고, 바닥의 높이차가 없을뿐더러, 보도의 재료를 이질감이 생기지 않게 공개공지로 끌어들임으로써 터의 경계가 드러나지 않게 하였다. 건물인지 길인지 구별이 없는 공간이 편안하게 보행자에게 제공되고 있다. 나는 이 건축에서 개별의 터와 건축이 도시 문화에 자신의 일부분을 기꺼이 제공하려는 모범적 공적 개념을 보았다. 건축이 도시 문화가 되는 접점이 거기에 있었고, 건축은 내게 비로소 문화로 인식되었다.
부산시의 이번 조치를 환영한다. 동시에 우려하는 마음도 있다. 힘들게 마련한 예산이 건축주들의 건물 단장 비용으로만 쓰이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려면,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시민의 공적 의식이 나날이 진보해야 함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