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의 치고 달리기] 무너진 자존심
스포츠라이프부 기자
꼬마 시절 놀이터에서의 추억을 떠올려 본다. 다방구·나이먹기·말뚝박기·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할 땐 ‘이제 집에 들어오라’는 어머니의 외침도, 팔꿈치·무릎에 피가 나는 줄도 몰랐다. 마냥 즐거웠다.
놀이에서 주인공일 때는 좋았다. 하지만 나이가 적다, 덩치가 작다는 이유로 밀려났을 땐 달랐다. 놀이를 지켜봐야만 했을 땐 슬펐다. 서러웠다. 은연중 ‘깡다구’라는 게 뭔지 깨달았다. 더군다나 그 일이 ‘내’ 동네 놀이터에서 벌어졌을 때는 더 심각했다.
다음 달 3일 부산에서는 대형 스포츠 이벤트가 열린다. 국내 한 대형 OTT 업체가 마련한 프랑스 프로축구리그 파리 생제르맹(PSG)의 방문 경기다. PSG의 상대 구단은 부산 연고 구단인 부산아이파크가 아닌 전북현대다. PSG에 합류한 이강인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축구 팬들의 관심이 높다. 당연하다. 축구 팬인 나도 마찬가지다.
관심도 좋지만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부산아이파크 패싱’이다. 경기가 열리는 부산 아시아드주경기장은 부산아이파크의 홈구장이다. 부산아이파크는 PSG와 전북현대, OTT업체의 잔치에서 대문 밖으로 밀려났다. PSG-전북현대 경기 부산 개최 소식이 알려지자 부산 팬들은 분노했다.
부산시는 지역 연고 구단 패싱 논란이 일자 ‘부산아이파크의 결정을 존중한다. 부산아이파크가 경기장 대관에 난색을 보인다면 굳이 PSG 경기를 유치할 필요가 없다’고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경기는 정상 개최되는 모양새다. 20일 오전 취재 결과 부산시는 부산아이파크의 양해를 얻어 PSG-전북 경기를 정상 진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부산아이파크 패싱 논란은 여전히 살아있다. 해소되지 않았다. PSG-전북 경기 부산 개최가 처음 알려졌을 때와 확정이 된 지금,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놀이터 밖에서 경기를 지켜봐야 하는 부산아이파크와 부산 축구 팬들의 자존심은 상처를 입었다.
부산시는 이번 경기에서 TV 등을 통해 지켜볼 전 세계 PSG 팬들에게 2030 부산세계엑스포 유치를 적극적으로 홍보한다는 계획이다. 경기 시간 중 전광판과 경기장 내 광고판이 홍보 도구로 활용될 전망이다.
부산시 체육 행정 담당자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는 반드시 성사돼야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 부산 시민들의 자존심은 지켰어야 한다. 사기업에 경기장을 내주기 전 부산시민과 부산아이파크, 부산 축구 팬들의 자존심을 지킬 방안이 뭔지 먼저 검토됐어야 한다. 부산시는 지금이라도 지역 연고 구단 패싱 논란에 대한 답을 내놓아야 한다. 만시지탄이지만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
김한수 기자 hanga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