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권의 핵인싸] 나만 살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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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물리학과 교수

이상기온 등 욕망이 빚은 지구 위기
생태계는 물론 인류 생존마저 위협
미래 살리는 진심 어린 노력 있어야

무더운 여름 한가운데를 무탈히 지나기도 만만한 일은 아니다. 이제까지 상상도 못 했던 엄청난 폭우와 가슴 아픈 사고들도 그렇지만, 새삼 세상이 갈수록 점점 더 험해진다는 느낌은 나이 탓만은 아닌 것 같다. 엄청난 자연의 위력 앞에서 보잘것없는 우리네 인간들의 무력함과 속수무책은, 그 자체로 과연 우리가 자연에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자책감을 가져오기도 하지만, 실종된 이들을 찾다가 초래된 어이없는 죽음, 또 새내기 선생님의 황망한 극단적 선택은 우리를 망연자실하게 한다.

결국 진심과 열심을 다한 사람들이 피해와 상처를 고스란히 받아 내야 하는 이 사회에서 우린 또 어떤 뻔뻔함과 억울함을 마주해야 할지 착잡하다. 그 착잡함은 또 어떤 힘없는 이들의 죽음을 마주하게 될지 모르는 절망감이기도 하다. 생때같은 우리 아이들을 온 국민이 보는 앞에서 수장한 지 불과 10년도 안 된 세월 동안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결국 미안해하기도 전에, 진심이어서는 손해만 보는, 나만이라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괴물 같은 시대를 만들어 낸 것 같다.


수십억 년 동안 지구의 평균 온도 자체는 섭씨 10도에서 30도에 이르는 구간을 널뛰기하듯 변해 왔다. 30억 년이라는 영겁의 시간 동안 지구가 지질학적 천문학적 요인에 의해 온도가 변해 온 것이야말로 자연의 섭리에 속하겠지만, 지구를 대변혁의 소용돌이에 맞닥뜨리게 했던 것은 온도 변화의 속도다. 이제까지의 어떠한 작은 온도 변화도 수만~수십만 년에 걸쳐서 일어났음에 반해 현재 지구의 온도 상승(섭씨 1도)은 불과 수십 년 동안에 일어나고 있다.

특히 현재 인류의 역사는 2차 세계대전 이후인 1950년부터 새로운 기록을 경신하고 있는데, 에너지 사용, 인구, 총생산, 물과 비료의 소비, 댐 건설, 교통수단의 급격한 증가라는 인간의 활동과 정확히 겹친다. 그 결과로 나타난 지구 생태계의 주요 지표들, 즉 이산화탄소·질산·메탄의 증가, 성층권의 오존층 파괴, 해양의 산성화, 열대림 손실의 그래프가 또한 정확히 같다.

어디 이뿐이랴. 미세 플라스틱으로 배가 가득 차 죽어 간 물고기와, 핵전쟁과 원전사고를 직접 겪고서도 방사능 오염수의 해양 방류를 묵인하는 우리는 어느 날 그것이 바로 내 이야기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는다. 이 행성에서 우리가 이루어 낸 역사는 지구 생태계에서 볼 때 아무리 길게 잡아도 수십만 년, 이 행성의 시간과 비교할 때 1만 분의 1도 안 되지만, 우리 인간이 특히 현대 인류가 이 행성에 남겨 놓은 상처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지대하다. 그것은 앞으로 우리 인류는 물론 이 행성의 존망을 위협할 정도다. 불과 10년 뒤의 우리의 모습조차도 현재로서는 예단하기가 힘들다. 수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뜨겁게 논란이 됐던 탄소중립의 치열한 논쟁과 노력에도 아랑곳없이 우리 지구의 평균온도는 5년 내에 온도 상승의 마지노선인 1.5도가 깨질 확률이 66%에 달한다고 한다.

인간의 욕망이 빚어낸 이윤창출의 극대화는 자연을 개발하고 이 행성을 개조시킨 ‘인류세’를 만들어 냈지만, 우리는 그나마 정작 인류세의 유일한 의미라고 할 수도 있는 우리 인간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들고 있지도 못하다. 결국 30억 년 전 뜨거웠던 이 행성이 식어 가면서 탄생한 이 아름답고 푸른 지구의 생태계를 우리 인류의 생존조차 위협하는 뜨거운 행성으로 스스로 만들고 있는 지금 우리는 과연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오늘을 보내고 있는 것일까.

이 모든 일들은 침몰해 가는 배에 타고 있는 우리 모두의 내부에서 나만이라도 잘 살아보겠다는 아비규환의 전조로 보인다. 아니, 각자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에 따라 체감되는 정도는 다르겠지만 이미 아비규환은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힘과 돈만 있으면 나와 내 아이들만은 예외가 될 거라고 믿고 있다. 파국의 시한은 어느 누구에게도 예외 없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는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우리는 저마다의 욕망을 찾겠다며 인간다움을 잃어 가고 있다.

이대로는 절멸할 것이라는 명백한 미래를 우리 모두가 인지한다면 정말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가질 터이다. 다 같이 죽어도 좋다는 심정으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서로를 그리고 우리의 미래를 살릴 진심 어린 궁리를 할 수는 없는 것일까. 비록 미래는 결코 녹록지 않은 상황이지만 어쩌면 이런 공동의 노력이 우리를 다른 차원의 공동 인격체로 비약시킬 수 있는 새로운 기회가 되지는 않을까.

어느 지인이 보내온, 생전 처음 보는 것인데, 무더운 여름에 빨갛게 익은 동백 열매 사진이 새삼 감동이다. 동백은 기름을 짤 것도 쓸 곳도 없어서 그냥 마당에 떨어지지만, 그렇게 해서 또 한 그루의 동백으로 시작한다고 한다. 죽어야 새로운 것이 태어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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