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80년 된 부산 최고령 아파트 비만 오면 대피령
자갈치시장 인근 소화장·청풍장
안전 최하등급 ‘E’ 붕괴 위험 노출
매년 호우·태풍 때면 대피가 일상
25세대 올해도 열흘간 피란살이
지자체는 ‘사유지’ 이유 대책 뒷짐
입주민 “언제 무너질지 몰라 불안”
부산의 '최고령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은 최근 집중호우로 보금자리를 떠나 임시 거처를 전전하는 '떠돌이' 신세가 됐다. 아파트 정밀안전진단에서는 이미 최하등급을 받았다. 골조가 목재로 지어진 탓에 집중호우 때마다 쫓기듯 대피생활을 반복하지만 지자체는 사유지라는 이유로 뒷짐만 진다.
25일 부산시와 중구청 등에 따르면 중구 남포동의 청풍장, 소화장 아파트에 사는 주민 32명은 지난 16일부터 이날 오전까지 인근 모텔 등 임시 숙박시설에 머물렀다. 집중호우로 아파트가 붕괴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당분간 폭우가 내린다는 예보가 없어 주민들은 이날 오후 장장 열흘간의 대피 생활을 마치고 귀가했다.
청풍장은 1941년 준공된 건물로서 ‘부산 1호 아파트’다. 소화장은 그로부터 3년 뒤인 1944년에 건립됐다. 당시에는 최고급 아파트여서 한국전쟁 때에는 국회의원과 정부 주요 인사의 숙소로 이용됐다. 지금은 전체 48세대(청풍장 24세대, 소화장 24세대) 중 25세대에만 주민이 거주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아파트의 내구성은 이미 임계점에 다다랐다. 두 아파트는 2021년 10월 정밀안전진단에서 최하인 E등급을 받았다. '시설물이 위험하니 즉각 사용을 금지하고 보강 또는 개축하라'는 뜻이었다.
특히 아파트 주요 자재로 쓰인 목재에 상당한 변형이 일어났다. 〈부산일보〉 취재진이 정밀안전진단서를 확인해 보니 ‘오랜 시간 습기와 누수에 노출돼 건물 자재인 목재가 부식해 천장과 바닥이 내려앉은 세대가 일부 발견됐다’ ‘구조 전문가의 검토 없이 리모델링이 시행돼 건물이 받는 하중이 증가하고 저항 내력이 감소했다’는 등의 위험을 경고하는 문구가 적나라하게 적혀 있었다.
주민들은 거의 매년 위태로운 줄다리기를 이어가는 처지다. 이들은 2020년 집중호우와 지난해 태풍 힌남노 때에도 아파트 붕괴 위험 때문에 피신했다. 주민 대부분은 형편이 어려워 이주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 입주민은 “집을 떠나니 불편하다. 임시 거처에선 잠도 제대로 못 잔다”며 “이웃 대부분의 형편이 좋지 않아 다른 곳에 가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수년 전부터 일종의 ‘작은 재해’가 되풀이돼 언제 터질지 모르는 ‘큰 참사’를 예견하지만, 지자체는 마땅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붕괴의 위험성이 뚜렷해서 주민은 늘 불안에 떨지만 지자체는 두 아파트가 개인 소유물이라는 이유로 섣불리 관여하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안전 최하등급을 받았다고 해서 지자체가 건물 소유주에게 보강이나 개축을 강제할 법적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특히 주민 이주 작업을 할 경우 25세대에 불과하더라도 거주지 마련, 정착비 지원 등에 상당한 예산과 시간이 필요한데 이를 위한 장기적 계획조차 세우지 못한 상태다. 인명 피해를 막을 ‘골든타임’을 놓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온다.
중구청 관계자는 “균열과 기울기 측정을 위한 계측기를 건물에 설치해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있다. 위험을 알리는 표지판도 설치했다”며 “아파트 입주민 대표를 만나 이주 대책 등을 논의할 계획이다. 붕괴 징조가 발견되면 행정 대집행을 통해 주민을 강제로 이주하게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시 관계자는 “비바람 등으로 붕괴 우려가 제기되면 선제적으로 주민들을 대피시킨다”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관련부서와 긴밀한 협의를 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