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색 현장의 숨은 영웅 ‘체취증거견 엘비’ 은퇴…새 가족 품으로
울산경찰청 첫 체취증거견…9년 근무 끝내고 퇴역
2014년부터 변사사건 피해자·실종자 수색 등 투입
“험지 수색도 거침없이 수행해 ‘상남자 엘비’로 불려”
경기도 포천 민간에 분양…반려견으로 제2의삶 찾아
범죄현장의 증거를 찾고 실종자 수색에 매진한 울산의 첫 체취증거견 ‘엘비’가 은퇴와 함께 새 여정을 시작했다.
울산경찰청은 체취증거견 엘비가 9년 간 근무를 마치고 지난 24일 명예퇴역했다고 26일 밝혔다.
엘비의 본래 이름은 ‘엘비스.’ 편의상 엘비라고 부른다. 활기차고 에너지가 넘쳐 별명이 ‘엘비스 프레슬리’다.
벨기에산 말리노이즈 수컷으로 태어난 지 9년 7개월이 지났다. 말리노이즈는 충성심이 뛰어나고 새로운 환경에 신속히 적응하며, 활동성과 지구력이 월등해 험지 수색에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엘비같은 체취증거견은 뛰어난 후각으로 범죄현장에서 유기된 시체를 찾거나, 각종 증거물을 확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개의 후각은 사람보다 1만배 더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엘비는 2014년 6월 담당 핸들러(경찰견 관리자) 김종호 경감과 짝을 이뤄 울산경찰청 과학수사계에 배치됐다. 엘비는 울산을 포함해 경북, 강원도, 충남 등 각종 변사사건뿐만 아니라 치매노인, 자살의심, 조난, 수난 등 여러 실종사건에 투입되며 존재감을 유감없이 뽐냈다.
특히 2019년 태풍 ‘링링’이 덮친 산속에서 9일간 실종된 60대 남성의 냄새를 좇아 발견하기도 했고, 2021년 울산 북구 무룡산 20대 실종사건, 지난해 광주 서구 아이파크 신축아파트 붕괴현장 실종자 수색까지 여러 방면에서 공을 세웠다.
김종호 경감은 “엘비는 그야말로 ‘상남자’ 스타일이다. 가시덤불이고 물이고 가리지 않고 거침없이 뛰어든다”며 “임무가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내게 다가와 애교도 부리고, 정말 매력이 많은 친구였다”고 말했다.
엘비는 은퇴 직전까지 경기 성남 실종자 찾기, 경북 예천 폭우 산사태 현장에 투입되는 등 마지막까지 최일선에서 맹활약했다.
김 경감은 “엘비가 1년에 한 40회 정도 현장에 투입되는데 한 번 나가면 3일에서 5일정도 수색활동을 벌인다”며 “강력범죄의 피해자나 실종자 수색 등 어림잡아도 100여 명은 찾아낸 것 같다. 엘비가 고생이 참 많았다”고 전했다.
엘비는 이제 고단했던 체취증거견 생활을 접고 민간에 분양돼 여생을 보내고 있다. 울산청은 분양 공고를 거쳐 이달 24일 경기도 포천시 민간에 엘비를 무상 분양했다.
김 경감은 “엘비가 이제 무거운 사명감을 내려놓고 반려견으로서 행복한 노후를 보내길 바란다”며 “지금도 많이 보고 싶고 자주 찾아가서 만나보겠다”고 말했다.
엘비의 퇴역으로 울산청이 보유하는 체취증거견은 2021년 들여온 ‘캘리(벨기에 말리노이즈, 1년 3개월)’만 남게 됐다.
울산청은 향후 경찰견을 전문적으로 훈련하는 민간 훈련소 등에서 체취증거견 한 마리를 추가로 도입해 실전에 배치한다는 방침이다.
권승혁 기자 gsh0905@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