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읽기] 민중문화의 독자성·생명력은 어떻게 소멸했는가
베난단티/카를로 긴즈부르그
<베난단티>는 미시사의 문을 연 이탈리아 역사학자 긴즈부르그의 명저다. 16세기 말부터 17세기 초까지 이탈리아 북동부 프리울리 지역에서 벌어진 농민들에 대한 이단 심문 기록을 바탕 삼은 저작이다. 지배층이 이교도에 대한 억압과 마녀사냥으로 민중문화의 독자성과 생명력을 어떻게 소멸시켰는지를 보여준다.
프리울리 지역의 농민들은 계절이 바뀌는 축일마다 회향가지를 들고 수숫단을 든 마녀들과 전투를 벌였다고 한다. 마녀들과 싸우러 나간 역할을 한 농민들은 스스로를 ‘베난단티’라고 불렀다. 마녀와의 싸움에서 농민들이 이기면 그해 풍년이 들고, 마녀들이 이기면 흉년이 되는 것으로 여겼다.
농민 ‘베난단티’들은 악마를 숭배하는 마녀와 싸우며 가톨릭을 수호한다고 스스로 믿었다. 하지만 교구 가톨릭 성직자의 고발로 신과 악마의 대결 구도 속에서 베난단티는 심문을 받게 된다. 자신의 일을 자랑스럽게 여겼던 이들 베난단티는 오랜 감금과 유도심문을 통해 스스로 마녀라고 자백하게 된다는 것이다.
긴즈부르그는 지금은 사라진 베난단티는 풍년을 기원하는 민간신앙의 한 형태로 유라시아 대륙에 넓게 퍼져 있던 샤머니즘이라고 본다. 그 샤머니즘이 가톨릭 교회로부터 이단의 단죄, 마녀 사냥을 당했던 것이다.
긴즈부르그는 유대인으로 무솔리니 치하에서 박해받은 경험이 있다. 파시즘 치하의 박해 경험과 베난단티의 박해가 유사성을 갖는다는 것을 책을 쓰면서 인식하게 되었다고 긴즈부르그는 말한다. 카를로 긴즈부르그 지음/조한욱 옮김/교유서가/416쪽/2만 6000원.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