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명섭의 플러그인] ‘이류 부산대병원’을 원하지 않는다
논설위원
2주 넘는 파업에도 해결 기미 난망
환자들은 고통과 죽음 문턱에 처해
노조, 불법 의료행위 폭로 공세 강화
추가 공개도 예고, 시민 신뢰 큰 타격
사태 지속 땐 병원 위상 추락 불가피
지역 거점 의료기관 역할 회복 절실
부산대병원 노조의 파업이 2주 차를 넘기고도 해결될 기미가 없다. 전국보건의료노조의 파업은 벌써 막을 내렸지만, 부산·울산·경남의 최대 거점 병원인 부산대병원은 오히려 노사 갈등이 더 심화하는 양상이다. 환자들은 죽음의 문턱으로 내몰리고 있다.
최대 쟁점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대한 노사 입장은 파업 초기에 비해선 다소 진전됐다고는 하나, 아직 합의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 노조가 지난 25일 부산역 광장에서 폭로한 부산대병원의 불법 의료행위는 시민들에게 큰 충격이었다. 예전 일부 병원에서 이런 일이 있다는 얘기가 돌기는 했다. 하지만 이번처럼 부산대병원과 같은 거점 병원에 근무 중인 간호사와 간호조무사가 공개된 장소에서 직접 이를 증언한 사례는 보지 못했다. 부산대병원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가 금이 가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무너질 만한 수준이다.
간호사의 대리 처방은 약과에 속하고, 집도 의사를 대신해 환자에게 설명하고 대리 서명을 한 것은 물론 심지어 간호조무사가 암 진단까지 했다고 한다. 또 의사가 환자를 만나지도 않고 신체 사진만 보고 진료를 한 적도 있다는 증언도 나왔다. 정말 어디까지 사실이라고 믿어야 할지 어리둥절할 뿐이다. 이번 파업의 종료 여부와는 별개로 부산대병원의 불법 의료행위 폭로는 진료 불신은 물론 병원 위상에도 큰 타격이 될 가능성이 높다. 병원의 가장 큰 무형 자산이 바로 환자들의 신뢰인데, 여기에 치명상을 입는다면 그 자체가 곧 위기다. 부산대병원 노조는 31일에도 추가 폭로를 예고했다. 그 여파가 어디까지 미칠지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부산대병원은 안 그래도 비정규직 직원의 정규직 전환을 놓고 수년 동안 심각한 노사 갈등을 빚었다. 이 때문에 직원 간 내부 불신과 불협화음이 팽팽한 상태다. 이러한 어수선한 내부 상황 자체가 모두 부산대병원의 위상에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시민들이 지역 최대의 거점 병원을 신뢰하지 못한다면 지역 의료계의 심각한 문제인 환자들의 역외 유출도 더 심화할 것은 뻔하다.
부산대병원은 대리 처방 등은 전국 병원 공통의 문제로, 개선 노력을 약속했다. 그렇다고 해도 불법 의료행위가 묻히지 않는다. 이것은 신뢰의 문제다. 무너지기는 쉽지만, 회복은 어려운 게 신뢰의 속성이다. 당장 본인이나 가족, 지인이 큰 수술을 받아야 할 경우 선뜻 부산대병원을 권유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마도 서울행을 권하는 이가 적지 않을 것이다. 현실을 냉정히 봐야 한다.
사실 부산대병원이 서울의 대형 병원보다 낫다고 믿는 지역민은 많지 않다고 봐야 한다. 여러 병원 평가가 있지만, 올해 초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사가 의료 전문가 추천과 환자 만족도 등을 종합해 공개한 ‘2023 세계 최고 병원’에서 부산대병원은 국내 병원 중에서 20위권 밖이었다. 그마저 갈수록 하락세다. 대구·경북, 호남, 충청의 대학병원에도 밀렸다.
부울경 지역 환자의 역외 유출 얘기가 나올 때마다 나오는 대답이 있다. 의료진과 진단 장비 등 측면에서 서울의 대형 병원에 비해 전혀 손색이 없고, 후유증 관리나 재발 여부 관찰에는 지역 대형 병원이 훨씬 우수하다고 말한다. 서울의 대형 병원 선호는 단지 지역 환자들의 선입견 탓이라고 한다. 전혀 틀린 말은 아닐 것이나, 그럼에도 지역 환자들의 서울행은 여전히 줄지 않고 있다. 부산·경남만 해도 1년에 100만 명이 훨씬 넘는다고 한다. 왜 이런 일이 줄어들지 않는지, 특히 지역의 최고 병원인 부산대병원은 심각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부산대병원에서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는 얘기는 잘 듣지 못했다. 안 그래도 환자는 넘쳐나고, 예약은 밀려 있다. 지역 최고의 병원이라는 자만심과 넘치는 환자는 역설적으로 부산대병원을 친절과 정성을 가장 원하는 환자들로부터 더 멀어지게 한다.
게다가 이번에 드러난 부산대병원의 신뢰성 훼손은 지역 의료계 전체에도 큰 부담이 될 것이 분명하다. 부산대병원이 전국은 물론 지역에서도 ‘이류 병원’이라는 냉소를 받지 않으려면 시민들의 신뢰 회복을 위한 환골탈태 수준의 개선책을 내놔야 한다. 그동안 수 개월간의 원장 공석 상태와 뒤이은 장기 파업, 그 과정에서 드러난 불법 의료행위는 그 자체로 시민들의 등을 돌리게 하는 요인이다. 그동안 내부적으로 곪아 왔던 이런 일들이 비정규직 문제 해결도 어렵게 했을 터이다.
어쨌든 부산대병원은 여전히 지역의 대들보 병원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태가 지속되고, 갈수록 시민들의 불신이 쌓인다면 이류 병원 취급의 수모를 당하지 않으리라고 장담하지 못한다. 이는 부산대병원이나 지역민이나 모두 바라는 일은 아닐 것이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