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사진 속 당신, 어디 있나요
중국에서 민주화 시위가 한창이던 1989년 6월 5일 새벽, 텐안먼(천안문) 광장을 지나던 탱크 행렬을 한 청년이 맨몸으로 막아섰다. 전날 중국 정부의 무력 진압으로 이미 수많은 인명이 희생된 터. 청년은 죽을 각오를 했던 것이다. 탱크의 위협에도 피하지 않았다. 위기일발의 순간, 누군가 그를 급히 끌고 가면서 상황은 일단락됐다.
청년이 탱크를 막아선 장면은 여러 외신기자들에 의해 카메라에 담겼다. 사진은 중국 공안의 갖은 감시와 방해에도 각국 언론사로 보내졌고, 그중 하나는 1990년 ‘올해의 세계 보도 사진상’을 수상했다. 중국 정부는 금기시하지만, 해당 사진은 ‘텐안먼 항쟁’을 넘어 ‘자유와 저항을 상징하는 불멸의 세계적인 아이콘’이 됐다. 하지만 청년은 이후 ‘탱크맨’이라 불렸을 뿐 정확한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았다. 행방도 묘연하다. 체포돼 복역 중이다, 이미 처형됐다, 대만에 살아 있다, 중국 본토에서 잘 지낸다…, 설왕설래가 분분하지만 어느 것 하나 확실하게 밝혀진 건 없다.
유사한 일이 ‘탱크맨’보다 이태 전, 우리나라 그것도 부산에서 있었다. 전두환 군사정권에 항거하는 민주화운동이 한창이던 1987년 6월 26일 오후의 일이다. 이날 부산 문현교차로에선 ‘국민평화 대행진’이라는 이름으로 시위가 열렸는데, 경찰이 최루탄을 쏘며 시위를 막았다. 그런데 갑자기 한 청년이 웃통을 벗은 채 뛰쳐나와 “최루탄을 쏘지 말라”고 외쳤다. 두 팔을 높이 올린 청년의 뒤에는 커다란 태극기가 펼쳐져 있었다.
청년이 최루 가스 속에서 외치던 장면은 당시 한국일보 기자로 있던 고명진 씨가 사진으로 남겨 오늘에 전해지고 있다. 사진은 촬영된 당시에는 공개되지 못하다가 1989년 공개됐고, 1999년 AP통신의 ‘20세기 100대 사진’으로 선정됐다. 그러나 ‘태극기 청년’으로 명명된 청년은, ‘탱크맨’이 그런 것처럼, 지금까지 신원과 행방이 알려지지 않고 있다.
동의대 영화학과와 TBN부산교통방송이 지금 ‘태극기 청년’을 찾고 있다. ‘1987 부산-그때 거기 있었습니까?’라는 다큐멘터리를 공동 제작하고 있는데, 해당 사진 속 주인공을 찾는 여정을 통해 1987년 부산 민주화운동의 기억을 재현하는 내용이라고 한다. ‘태극기 청년’이 세상에 알려지길 바라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옳음을 위해 두려움을 딛고 폭압에 저항한 그 용기는 기억해야 할 가치가 충분하다 할 것이다. 제작진이 관련 제보(051-890-2737)를 받고 있으니 관심 가져 볼 일이겠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