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희와 함께 읽는 우리 시대 문화풍경] 지역은 어떻게 기록되는가
부산대 대학원 예술·문화와 영상매체협동과정 강사
개항도시 부산은 근대의 통로였으며, 해방기와 한국전쟁기에는 귀환민과 피란민을 한껏 품으며 도시의 규모를 확장해 나갔던 지역이다. 한국 근대를 이해하는 핵심 지역인데도 이제껏 소홀하게 다루어져 왔다. 1995년 지방자치제가 실시되면서 서울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함께 지역 연구의 당위성이 강조되었다. 그런데도 지역사료의 부족은 연구의 확대 재생산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작용한다. 이러한 현실에서 부산시의 현대 생활문화 구술자료 수집사업과 부산문화재단의 부산예술인 아카이빙사업은 지역의 역사성과 문화적 가치를 길어 올리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예술이 사회적 산물이듯이 예술가의 자전기록과 동시대를 살았던 곁사람들의 기억은 결코 개인적인 차원에 머무를 수 없다. 예술가 개인을 넘어 그가 살았던 시대를 환기하는 까닭에 단순한 참조자료로 취급해서는 곤란하다. 부산음악사는 어떨까. 부산·경남지역 예술사회를 일구었던 날들을 증언한 작곡가 금수현의 〈나의 시대 70〉, 동시대 음악인들의 면모와 활동을 갈무리한 피아니스트 제갈삼의 〈잊을 수 없는 음악인과 음악회〉, 시대적인 맥락 속에서 자신의 음악적 여정을 기록한 작곡가 정원상의 〈그때 그 노래소리가〉가 대표적이다. 자서전과 회고록은 지역예술사를 직조하는 씨줄과 날줄이자 후속 연구를 촉발하는 마중물이다.
최근 발간된 나광자의 회고록 〈80년 세월이 가져다준 선물들〉은 1965년 결혼과 함께 부산에 정착한 한 피아니스트의 음악적 연대기다. 빛나는 생의 순간을 예리하게 포착한 화가 전준자의 크로키 표지화가 인상적이다. 한성여자실업대학(현 경성대)을 거쳐 부산대학교에서 숱한 제자를 배출했던 그의 삶을 통해 부산지역 대학 음악교육의 역사와 마주할 수 있다. 〈부산음악의 지평〉, 〈나는 이렇게 들었다〉, 〈청중의 발견〉에 이은 김창욱의 비평적 에세이 〈잃어버린 콩나물을 찾아서〉도 마찬가지다. 1990년대 이후 부산음악사회의 풍경으로 독자를 환하게 소환한다. 이러한 기록은 부산음악사 연구를 확장하고 지역의 정체성을 재구성할 수 있는 밑바탕이다.
이즈음 1세대와 마찬가지로 2세대 예술가들의 삶을 증언할 지역 예술사료가 썰물처럼 가파르게 사라져가고 있다. 예술가의 삶과 활동을 어떻게 갈무리해야 할지 고민이 깊은 까닭이다. 예술 아카이브는 국가예술사의 지배적인 인식이나 해석을 넘어 지역예술사의 구체적인 맥락을 파악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자 무기다. 문헌자료와 구술자료를 통합한 예술 아카이브는 지역문화사, 나아가 한국문화사를 재편하기 위한 기초작업이다. 기록과 기억이야말로 부산이라는 공간 위에 새긴 근현대 시간의 지평으로 우리를 환하게 이끄는 통로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