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통신사선 212년 만에 대한해협 건너간다
28일 해신제·29일 출항 세리머니
8월 1일 부산 출항 이즈하라항까지
선장·학예연구사 등 9명 승선
선박 복원 5년 만에 뱃길 재가동
“제가 정사로 임용받아서 일본에 국서를 전달하는 막중한 임무를 띠었습니다. 올해 마침 통신사선을 타고 212년 만에 일본에 가게 됐습니다. 지난 10여 년 동안 한국과 일본은 상당히 많은 갈등을 빚었습니다. 요새 들어서 우호 친선의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 우리 통신사 일행이 일본을 방문하게 된다는 것은 한일 관계 개선에 큰 동력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오는 8월 1일 부산에서 출발해 212년 만에 일본으로 향할 ‘조선통신사선 13차 항해’의 성공과 안전 운항을 기원하는 ‘출항 세리머니’에서 정사를 맡은 정재정 서울시립대 명예교수가 각오를 밝혔다.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가 2018년 조선통신사선을 복원(재현선)했지만, 실제로 대한해협을 건너 일본으로 들어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811년 12차 사행 이후 212년간 멈췄던 한일 조선통신사 뱃길이 재가동되는 것이다. 하루 5시간씩 동력과 전통 돛으로 항해해 첫날 쓰시마 히타카쓰 국제항에 입항해 입국 심사를 위해 승선자들이 잠시 육지를 밟은 뒤 다음 날 이즈하라항에 정식 입항할 예정이다.
조선통신사선을 재현하기 위한 문헌 조사·설계·진수부터 현재 운항까지 조선통신사선 운항을 총괄하고 있는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홍순재 학예연구사는 “제가 조선통신사 사업을 한 지 9년이 되었는데 오사카항까지 항해해 보는 게 숙원이자 꿈이었는데 이번에 비로소 바닷길이 열려준 것 같아 감개무량하다”면서 “부산에서 쓰시마까지 거리는 54km밖에 안 되지만 그동안 이 배로 7600km를 항해한 경험을 살려서 꼭 성공하겠다”고 의지를 불태웠다.
‘출항 세리머니’는 지난 29일 오후 부산 남구 용호별빛공원 선착장 바지선에서 열렸다. 이 자리엔 삼사로 선정된 정 정사뿐 아니라 부사 역에 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장, 종사관 역에 김형태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문화재청 이경훈 차장,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김성배 소장, 오스카 츠요시 주부산일본국총영사, 강남주 조선통신사 세계기록유산 등재 한국 측 학술위원장, 성보박물관장 환웅 스님, 이은석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장, 박화진 조선통신사학회장 등 50여 명이 함께했다.
이번 사업을 주최한 부산문화재단 이미연 대표이사는 “2018년 10월 26일 조선통신사선 진수식 이후 무려 1740일을 기다려서 일본 쓰시마 입항을 준비하고 있다”면서 “조선통신사선이 대한해협을 건너는 꿈을 꾸면서 기다린 긴 시간이었다”고 감격했다. 실제 이 배는 2019년 8월에도 쓰시마로 출항하려고 했으나 한일 관계 악화 등으로 무산됐고, 이후 코로나19로 3년여를 더 기다려야 했다.
이날 출항 세리머니에선 참석자들이 조선통신사선을 타고 옛 조선통신사 일행이 절경이라고 감탄해 마지않았던 이기대와 오륙도를 돌아 나오는 뱃길 탐방을 1시간 30여 분에 걸쳐 진행했다. 배 안팎에서는 부산태극취타대와 부산예술단 등의 공연이 떠들썩하게 펼쳐졌다. 특히 선상에서 맛보기 형태로 선보인 ‘마상재’ 기예에 큰 박수가 쏟아졌다. 마상재는 말을 타면서 부리는 전문 기예인데 조선통신사와 함께 가면서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출항 세리머니 전날인 28일 밤엔 부산 동구 자성로 영가대에서 ‘13차 항해’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는 해신제가 재현(부산닷컴 온라인 7월 29일 자 보도)됐다. 형형색색의 불을 밝힌 영가대 제단 앞에 무릎을 꿇은 초헌관(첫 번째 잔을 올리는 일을 맡아보던 제관) 정재정 명예교수가 큰 소리로 축문을 읽으면서 초헌례가 시작됐다. 아헌관(두 번째 술잔을 올리는 일을 맡아보던 제관)은 부사가, 종헌관(세 번째 술잔을 올리는 일을 맡아보던 제관)은 종사관이 각각 맡았다.
영가대 해신제는 임진왜란 이후 1607년부터 200년간 한국과 일본을 왕래하며 선린우호의 정신을 내보였던 조선통신사가 일본으로 떠나기 전에 바다 용왕께 뱃길의 무사 항해를 빌었던 제례이다.
해신제 봉행은 조선통신사문화사업회 시절이던 2006년 처음으로 복원한 이래 여러 차례 가졌지만, 올해만큼은 분위기가 남달랐다. 1811년 12차 사행 이후 212년간 멈췄던 조선통신사선의 ‘13차 항해’를 앞두고 열린 뜻깊은 해신제였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무사 안녕을 기원하는 해신제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제례 참여자뿐 아니라 음식 등에도 신경 쓴 인상이 역력했다. 해신제 역시 통상 조선통신사 축제가 열리던 5월에 봉행해 왔지만, 올해는 조선통신사선 13차 항해 시기로 맞췄다. 해신제 제수 준비는 문화요리학원 이경희 원장이 맡았다. 이 원장은 2019년 조선통신사 해신제 음식 연구의 성과를 인정받아 부산시 최고 장인(요리 직종)으로 선정된 바 있다.
현재 일정대로라면 8월 1일 9명(선장 기관장 항해사 학예연구사 부산문화재단 관계자 등)을 태운 조선통신사선이 부산항을 출발해 당일 오후 쓰시마 히타카쓰항까지 71km를 항해(4시간 50분 소요 예정)하고, 다음 날 60km를 더 가(4시간 소요 예정) 최종 목적지인 이즈하라항에 도착할 예정이다. 최대 승선 인원은 69명이지만, 이번엔 최대 12인 이내로 국제항해 허가를 받았다. 실제 승선 인원은 9명이다. 이들도 해신제에 참석했다.
전폐례(해신제 준비를 마감하는 최종 단계)로부터 망요례(해신제의 끝남을 알림)까지 걸린 시간은 40분 남짓으로 참석 내외빈과 일반 시민 등 50여 명은 실제 제사에 함께하듯 숙연한 마음가짐으로 함께했다. 특히 실제 항해에 나서는 이들과 이미연 대표이사 등 관계자들은 맨 마지막에 영가대 제단으로 나아가 술을 올리고 다 함께 절을 올렸다.
한편 8월 5일과 6일 이틀간 펼쳐지는 이즈하라항 축제에서는 조선통신사선을 활용한 선상 박물관과 선상 문화 공연, 조선통신사 행렬 참여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쓰시마 시민을 비롯한 국내외 관람객들과 만날 계획이다. 이를 위해 부산에서는 부산태극취타대, 춤패 배김새, 부산문화재단 관계자 등 50여 명이 쓰시마를 방문한다.
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