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데스밸리 인증 샷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북동쪽으로 480㎞, 자동차로 5시간을 달리면 죽음의 계곡이 나온다. 가장 낮고 뜨겁고 건조한 곳, 데스밸리(Death Valley)다. 캘리포니아주와 네바다주에 걸쳐 광대하게 펼쳐진 이곳은 해수면보다 무려 85m 낮은 분지로 1년에 떨어지는 빗물이 고작 50㎜ 안팎에 불과한 황무지다. 암염으로 이뤄진 협곡과 일렁이는 모래사막에 바람과 시간이 만들어 내는 극단의 풍경을 누군가는 ‘가혹한 아름다움’이라 표현했다. 달이나 화성에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하는 외계 풍경은 이곳이 영화 ‘스타워즈’ 촬영지였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한다.
데스밸리의 유래는 골드러시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848년 캘리포니아에서 금광이 발견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미국 전역에서 너도나도 마차에 올라 서부 개척에 나선다. 이들은 시에라산맥의 혹독한 겨울을 피해 계곡으로 들어선다. 그러나 황량한 대지에 소금 웅덩이가 전부인 사막 속 행군은 끝날 줄 몰랐다. 마차를 땔감으로 삼고 말로 육포를 만들어 연명하며 행군을 이어 갔지만,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죽음의 계곡이다. 벤처기업이 연구개발에 성공한 후 매출 부진과 자금 고갈로 위기에 봉착하는 기간을 데스밸리라 부르는 것도 이런 연유다. 죽음의 계곡을 건너야 유니콘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
데스밸리가 더 유명한 건 이곳이 지구의 ‘핫 스폿’이기 때문이다. 1913년 7월 10일 데스밸리의 퍼니스 크릭에서 관측한 56.7도가 공식 지구 최고기온으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이를 상징하듯 세계에서 가장 큰 온도계도 이곳에 있다. 가까이는 2020년 8월 16일 54.4도를 찍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극한 기온으로 조만간 최고기온을 경신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최근 세계적 폭염으로 데스밸리 온도계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연일 50도를 웃도는 데스밸리에 극한의 무더위를 체험하려는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있다는 소식이다. 디지털온도계 앞에서 모피 코트를 입고 선 인증 샷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태양이 피부를 뚫는 느낌’이라는 체험 글도 등장했다. 지구촌 곳곳에서 폭염으로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아찔한 체험이 아닐 수 없다. 데스밸리에서도 7월에만 2명이 숨졌다. 국내에서도 장마 후 폭염이 본격화하면서 사망자가 속출한다. 수퍼 엘니뇨 사이클이 본격화하는 2024년에는 지구가 더 뜨거워진다고 하니 걱정이다. 우리는 지금 기후 위기라는 죽음의 계곡을 지나고 있다.
강윤경 논설위원 kyk93@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