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살 아파트’ 전수조사 방침에 건설업계 ‘전전긍긍’

권상국 기자 ksk@busan.com , 김덕준 기자 casiopea@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무량판 구조 293개 민간 아파트
국토부, 철근 누락 여부 점검
적발 땐 브랜드 이미지 추락
건설사 부랴부랴 자체 현장 조사
사태 계기로 점검 강화 목소리
최저가 입찰 LH 발주 방식 논란

1일 경기도 오산시 세교2 A6 블록 아파트 주차장에 보강 작업을 위한 잭 서포트가 설치돼 있다. 국토교통부는 전날 지하 주차장 철근을 빠뜨린 한국토지주택공사(LH) 아파트 15개 단지를 공개했다. 연합뉴스 1일 경기도 오산시 세교2 A6 블록 아파트 주차장에 보강 작업을 위한 잭 서포트가 설치돼 있다. 국토교통부는 전날 지하 주차장 철근을 빠뜨린 한국토지주택공사(LH) 아파트 15개 단지를 공개했다. 연합뉴스

“서둘러 사람을 보내서 공사 현장을 점검했는데 얼마나 놀랐던지….”

건설 과정에서 보강 철근이 누락된 이른바 ‘순살 아파트’ 사태가 일파만파로 확산되자 건설업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부산의 한 중견 건설사는 다른 지역에 있는 현장으로 사람을 보내 철근 누락 여부 등 설계도면을 체크하는 등 진땀을 흘렸다. 이 건설사 관계자는 "국토부 발표 이후 우리도 놀라서 당장 현장에 사람을 보내서 확인했다"며 "다행히 우리 현장에서는 무량판 구조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고, 철근 누락도 없다고 해서 가슴을 쓸어내렸는데 지금 다들 긴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1일 국토부 등 관계 부처에 “고질적인 건설산업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을 방안을 마련하고, 법령을 위반한 사항에는 엄정한 행정 및 사법적 제재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지난달 31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무량판 구조 아파트 중 철근이 누락된 단지의 명단을 발표한 국토부는 1일 민간아파트에도 해당 사례가 있는지 전수조사를 하겠다고 나서 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부산 등 지역 중소 건설사들이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전수조사를 하면 대형 건설사들보다 중소형 건설사들의 공사 현장에서 위법 사항이 더 많이 적발될 것”이라며 "국토부가 철근을 누락했다고 한 아파트 시공사를 보면 중소형 업체가 대부분"이라고 우려했다.

부산 정비업계도 뒤숭숭한 분위기다. 부산의 한 정비업계 관계자는 “가뜩이나 분양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시공사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는데, 기존에 계약한 업체들마저 일손을 놔버리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건설사, 이미지 실추 ‘전전긍긍’

국토부에 따르면 2017년 이후 준공된 민간아파트 중 무량판 구조를 채택한 곳은 시공 중인 곳과 준공된 곳을 합쳐 293개 단지다.

무량판 구조란 기둥이 천장의 무게를 모두 부담하는 구조다. 이 때문에 기둥 안에는 철근과 보강철근이 촘촘히 짜여져야 한다. 국토부는 LH 아파트의 무량판 구조 철근 누락은 건축 전문가의 이해 부족 등으로 발생했다고 진단했다. 그래서 민간아파트 중에서도 철근 누락이 발생한 단지가 적지 않을 것으로 본다. 게다가 일부 민간아파트 중에는 LH 아파트가 무량판 구조를 사용해 문제가 된 지하주차장은 물론 주거 동에도 적용한 곳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하주차장 위에 주거 동이 위치한 곳에도 무량판 구조를 썼다는 이야기다.

국토부는 이달 중 293개 아파트 단지 점검 일정과 방법을 밝힌 뒤 본격적인 점검에 들어간다. 결과는 3개월 뒤 발표할 예정이다.

이 때문에 건설사마다 전국 현장에서 자체 점검을 한창 진행 중이다. ‘순살 자이’라는 오명으로 브랜드에 큰 타격을 입은 GS건설의 전철을 밟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분양 시장이 얼어붙은 상태인 데다 추가로 공사 현장을 확보해도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큰 마진을 남기지 못하는 건설업계다.

자체 조사 결과와 달리 국토부 조사에서 문제가 있는 것으로 결론이 나면 그나마 짓고 있는 아파트까지 미분양 등 악성 재고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설계 시공 등 전 과정에서 부실

건설업계의 볼멘소리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1월 광주 아이파크에 이어 지난 4월 인천 검단신도시까지 현장에서 연쇄적으로 붕괴 사고가 벌어지자 민심은 싸늘하게 식었다. 공공과 민간을 가리지 않고 건설 현장 감시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문이 늘고 있다.

일단 이번 LH의 ‘순살 아파트’ 사태는 최저가 입찰을 고수해 온 LH 발주 방식이 가장 큰 문제다. 하도급 업체를 고를 때 양질의 업체를 선택해야 하지만 LH가 입찰에서 원가 경쟁력 확보를 요구하니 현장에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하도급 업체를 고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풍부한 인력을 갖춘 대형 건설사와 달리 설계를 재검토할 기술자가 부족해 무조건 설계만 믿고 가야 하는 중소 건설사의 사정도 원인으로 지적된다.

건설업계의 한 전문가는 "3D(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3대 업종) 기피 현상 탓에 건설 공사장에서 일손을 구하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역량 있는 기술자의 씨가 말랐다"면서 "빈자리를 채운 외국인 노동자는 의사 소통도 힘든 데다 안전 의식 자체가 결여된 경우가 많아 아찔한 수준"이라고 전했다.

무엇보다 연쇄적으로 발생한 붕괴 사고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설계부터 시공과 감리까지 단계마다 원칙이 준수되는지 점검을 강화할 필요성이 높아졌다. 국토부와 LH가 전날 발표한 지하 주차장 철근 누락 15개 단지를 보면 설계, 감리, 시공 등 전 과정에서 부실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특히 기둥만 사용하는 무량판 구조는 보와 기둥을 같이 사용하는 라멘 구조보다 취약한 만큼 정확한 설계와 시공 관리가 필수라는 지적이다. 붕괴 사고 시 휨 파괴가 아니라 전단 파괴로 이어지기 때문에 위험도가 높기 때문이다.

동아대 최재호 건설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사전에 설계 단계에서 철근 설계 미흡이나 설계 하중 초과 등을 검토해 명확한 해석을 내릴 수 있게 해야 한다”면서 “시공사도 슬래브와 콘크리트 강도 부족 등을 철저히 감독해야 붕괴 사고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권상국 기자 ksk@busan.com , 김덕준 기자 casiopea@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