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영세상인 수십 년 울린 부경양돈 ‘갑질 계약’ 비판 고조

이경민 기자 mi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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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 지연·부산물 하자 있어도 할당 받아야
인수 거부 땐 처리물량 비용 상인이 떠 안아
상인회, 1~2일 소 부산물 인수 거부 ‘보이콧’
“20년 이상 된 불공정계약 개선하라” 주장
중도매인에 책임 전가 공판장에 비난 거세

경남 김해시 주촌면에 있는 부경양돈농협 축산물종합유통센터 전경. 이경민 기자 경남 김해시 주촌면에 있는 부경양돈농협 축산물종합유통센터 전경. 이경민 기자

부경양돈농협이 운영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축산물종합유통센터(이하 부경공판장)가 불공정계약을 내세워 영세상인들에게 수십 년간 ‘갑질’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상인들은 소 부산물 인수를 거부하고 불공정한 계약을 바로 잡아달라며 읍소하고 나섰다.

부산물상인연합회·부산 구포축산물시장상인회·김해 주촌축산물도매시장상인회 소속 250여 개 업체는 지난 1일과 2일 각 점포에 할당된 소머리·생간·천엽·곱창 등 소 부산물 인수를 거부했다. 1일 부경공판장에서는 소 850마리가 도축됐고 약 1억 5000만 원에 달하는 부산물이 전량 폐기됐다.

상인들이 소 부산물 인수를 거부한 이유는 부경공판장과 맺은 불공정계약 때문이다. 이들은 앞서 공판장에 7월 말까지 오후 5시 작업 완료, 기계 고장으로 지연 생산된 부산물 처리기준 제시, 소머리·우족 제모 미흡·내장 세척 불량 개선 등을 요청했으나 지켜지지 않았다.

상인 A 씨는 “다른 공판장은 오후 3~4시면 작업이 끝난다. 여기는 오후 7~8시까지 기다리는 게 다반사”라며 “너무 늦어 신선도가 중요한 생간·천엽은 팔 수가 없다. 곱창도 하루 냉장 보관하면 냉동실로 직행한다. 이번 일은 긴 시간 곪고 곪은 것이 터진 것”이라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갑과 을 관계와 같다. 공판장 기계 고장으로 저질의 상품이 생산돼도 상인이 무조건 할당량을 인수하고 값을 치러야 한다. 불공정한 계약서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한 상인은 부경공판장에서 인수한 소 부산물이 판매할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아 결국 폐기했다고 전했다. 상인 제공 한 상인은 부경공판장에서 인수한 소 부산물이 판매할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아 결국 폐기했다고 전했다. 상인 제공

계약 형태를 보면 부경공판장은 중도매인협회와 1차 계약을 맺고, 중도매인협회가 다시 상인회와 계약을 맺어 소를 도축하면 나오는 부산물을 처리하게 했다. 상인회는 이 과정에서 부산물 인수 비용을 공판장에 지불하고 소비자 등에 팔아 생계를 유지한다.

문제는 공판장 측의 잘못으로 부산물 처리가 지연돼 제품 신선도가 떨어지거나 하자가 발생해 판매가 어려워도 상인회가 제품을 인수해야 한다는 점이다. 인수하지 않으면 그에 따른 모든 비용은 상인회가 고스란히 물어야 하도록 계약서에 명시돼 있다.

이런 계약 형태는 20년 이상 지속돼 온 것으로 드러났다. 청년 상인들은 1999년 부경양돈농협과 작성한 이른바 ‘갑질 계약서’가 지금까지 자동 갱신돼 이어져 왔다며 부당함을 토로했다. 지난 1일 부산물 인수 거부로 발생한 손실금 약 1억 5000만 원도 모두 상인에게 부과됐다.

그러나 상인들로부터 수수료를 받고 소 도축과 부산물 생산을 담당하는 공판장 측은 이런 불공정계약에 대해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부경공판장 관계자는 “우리는 손실금을 책임질 이유가 없다. 중도매인협회와 계약했으니 협회와 이야기하겠다. 협회가 상인회에 청구한대도 우리와는 관계없다”며 “지난해 2월 문을 연 공장은 이제 안착해가고 있다. 미흡한 부분은 개선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부경공판장은 중도매인협회를 중간에 두고 사실상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영세상인들에게 우월적 지위를 이용, 갑질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문제가 불거지자 공판장 측은 이달 말까지 상인회가 요청한 부분에 대해 노력하겠다고 밝히면서도 불공정계약 개선에 대해서는 여전히 나몰라라하고 있다.

상인 B 씨는 “이 일을 30년 이상 해왔지만, 부경양돈농협 측이 책임지는 경우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면서 “요구 사항이 이번에도 지켜지지 않으면 그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손실은 공판장이 책임진다는 문구를 반드시 문서화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한편 부경양돈농협은 1866억 원을 들여 경남 김해시 주촌면에 축산물종합유통센터를 짓고 지난해 2월 운영을 시작했다. 9만 5538㎡, 연면적 8만 1692㎡ 규모로 하루 돼지 4500마리, 소 950마리를 도축·가공할 수 있는 전국 최대 시설이다. 이 시설이 생기면서 부경양돈농협의 하위 조직이었던 주촌면의 부경축산물공판장과 어방동의 김해축산물공판장이 통합돼 지금의 부경공판장이 됐다.



이경민 기자 mi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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