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양지에서 발견한 ‘패턴’ 이상원 작가 [전시를 듣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바다와 공원
사람들 모습에서 시대성 읽어내
바람에 흔들리는 유채꽃밭 표현
인물은 단순함 속 다양함 그려내
복합시점 이용한 바다 그림 눈길
바다, 꽃밭, 공원에서 만나는 사람들 모습에는 ‘패턴’이 있다.
이상원 작가는 2006년 홍익대 회화과 석사 졸업 후 휴양지를 그리기 시작했다. “이전에도 ‘이게 그림이 될 수 있을까’ 싶은 일상을 그렸어요. 공원에서 텐트를 치고 노는데, 한 사람이 하면 취향이지만 수백 명이 하면 사회적 연구 대상이 될 수 있죠. 전 국민이 한다면 거기서 시대성을 읽어낼 수 있겠죠.”
주5일근무제가 정착되면서 이 작가의 눈에 공원, 스키장에 사람이 몰리는 게 보였다. “성산대교 양쪽으로 한강공원과 수영장이 있어요. 다리 위에서 보면 사람들이 바글바글한데, 스키장 곤돌라 밑으로 보이는 풍경과 유사했죠.” 수영하고 스키 타는 사람의 의상, 공원에 깔린 돗자리가 물방울 무늬처럼 규칙적 패턴을 만들었다. 그런 패턴은 봄·여름·가을·겨울 계절별로도 반복됐다.
“하늘에서 내려다 보는 ‘버즈 아이 뷰 샷’으로 사진을 찍어서 그림에 옮겼어요. 신문도 중요한 보도사진은 위에서 찍잖아요. 사람 눈높이에서는 중첩되고 가려져 보이지 않던 모습이 보였고, 그렇게 다양한 시점으로 풍경을 의미있게 포착할 수 있겠다 싶었죠.”
이상원 작가 개인전 ‘ㅡ, 마주한 바다’가 지난달 부산 수영구에 개관한 비트리갤러리 부산점에서 열리고 있다. 이 작가는 2020 두바이세계박람회에서 2030부산세계박람회 유치 홍보 영상 설치 작품을 선보여 주목을 받았다.
1980년대에 지어진 주택을 개조한 갤러리 한쪽에 둥글고 노란 작품이 걸려 있다. 부산 대저생태공원 유채꽃 축제 현장을 버즈 아이 뷰로 담은 그림이다. 유채꽃밭에 사람들의 다리가 파묻히고 상반신만 나와 있는 모습이 흡사 노란색 바다를 유영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작가는 유채꽃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그렸다고 했다. “실경에 가깝게 꽃밭을 묘사하는 등 여러 실험을 했는데 짧은 터치를 연결해서 만든 질감이 가장 잘 맞았던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빈센트 반 고흐의 영향을 받을 것 같기도 하고요.”
나이키 티셔츠를 입은 사람 등 그림 속 인물 표현이 구체적이라는 지적에 대해 “추상적으로 표현하려 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물감 덩어리를 툭툭 찍어내는 방식으로 사람을 단순화하려고 했죠. 대신 단순함 속에 다양함을 느낄 수 있게, 자세히 보면 세 명의 사진을 찍어주는 사람의 스마트폰 속에 찍히는 세 사람이 담겨 있어요.”
이 작가는 인물 표현에 사용할 유화물감은 미리 짜서 반건조 상태로 캔버스에 붙인다고 했다. “그렇게 캔버스에서 시간이 지나면 물감이 굳어요. 이 부분은 그리기가 아니라 만들기에 해당하는 거죠. 돌출된 팔 모양의 경우 1cm 이상 튀어나온 것도 있어요.”
바다 풍경에서는 ‘파노라마 뷰’가 자주 등장한다. 파노라마 촬영 기능이 없던 시절에는 여러 장의 이미지를 이어 붙여서 270도, 360도 펼쳐진 모습을 그려냈다. 이 작가는 바다든 꽃축제 현장이든 사람들이 모인 곳에는 공통점이 있다고 했다. “서로 적당한 거리를 두고 가족·친구·연인이 모여 있어요. 개미나 얼룩말이 무리별로 움직이는 것처럼 공간에서의 규칙성이 있죠. 그걸 패턴으로 옮기면 시각적으로 재미있는 지점이 있어요.”
해운대 해변에서 바라본 바다의 윤슬과 오륙도 등 이 작가는 상상으로 그릴 수 없는 풍경을 그린다. 실제로 작가의 스마트폰에는 수많은 바다 사진이 들어 있었다. 그는 광안리 아침 사진을 보여줬다. “사진 찍기 좋게 숙소를 잡을 때도 일부로 높은 층을 잡아요. 바다 그림은 해군에서 복무할 때부터 그렸어요. 10년 그리면 바닥이 나지 않을까 했는데 똑같은 바다는 없더라고요. 앞으로는 더 추상적인 바다 그림으로 갈 수도 있겠다 생각해요.”
물감을 두텁게 올려 파도를 표현하고, 조명을 받으면 윤슬처럼 보이는 표면 등 이 작가의 바다 그림은 다양하다. 이 작가는 복합시점을 사용한 작품 ‘더 파노라믹’ 앞에 섰다. “큰 그림에서 여러 시점의 변화가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작업을 시도하죠. 한 작품에 위에서 내려바보는 시점과 아래에서 위로 보는 시점이 같이 있어요.” 이 작가는 자신의 석사 논문 주제는 ‘사진과 회화’, 박사 논문 주제는 ‘시점’이었다고 했다.
물감으로 파도의 일렁임을 표현한 그림 끝에 매달린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 사람이 하나씩 있어요. 팔 하나가 삐져 나가거나 밑에서 보면 그림을 벗어난 것 같이 보여요. 화면을 가득 채우는 올오버 패턴에서는 밖으로 폭발해서 확장되어 나가는 느낌을 받을 수 있거든요. 그림 속 바다는 한 조각이지만 밖으로 계속 연결되고 확장되는 시점을 보여주는 거죠.”
이번 전시 제목 ‘ㅡ, 마주한 바다’의 ‘ㅡ’에는 바다를 마주한 관람객의 이름을 채울 수 있다. 전시는 오는 26일까지 비트리갤러리 부산점(수영구 황령산로 22번길 8)에서 열린다. 매주 월·화요일은 휴관한다.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