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의 친구들] "삶터서 내몰린 아이들 외면 못 해"
온천냥이행복사회적협동조합
노후·불량 주택이 밀집한 지역에는 주거환경 개선을 위해 집단 이주를 통한 재개발이 진행된다. 하지만 사람이 다 떠난 뒤에도 떠나지 못하는 존재가 있다. 바로 그곳이 보금자리인 길고양이들이다. 영역 동물인 고양이는 자신의 살던 곳을 쉽게 떠나지 못해 철거 공사가 시작되면 압사 당하거나 굶어 죽곤 한다. 2019년 부산 동래구 온천 4구역 재개발 현장도 그랬다. 당시 길고양이를 구조하기 위해 동래구와 민간 동물단체 협의체인 ‘온천냥이 구조단’이 힘을 합쳐 320마리를 구조했다. 그중 176마리는 중성화 후 안전한 곳에 방사했다. 아픈 고양이들은 치료한 후 입양을 보내거나 임시보호를 진행했다.
여러 이유로 방사하지 못한 고양이 10마리가 갈 곳을 잃었다. 집이 없어진 고양이들은 ‘온천냥이행복사회적협동조합’이 품었다. 온천냥이 구조단 활동에 참여한 사람들로 구성된 온천냥이행복사회적협동조합은 구조 활동이 끝난 후에도 남은 길고양이를 마지막까지 돌보자는 마음으로 뭉쳤다. 그러나 막상 10마리의 고양이를 보살피려니 마땅한 공간이 없었다. 그때 고양이 호텔 ‘고양이는 외계인’을 운영하던 조합원 심성진 씨가 손을 내밀었다. 심 씨가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사업체지만 저렴한 가격으로 온천냥이들이 머물 곳을 내준 것이다.
현재는 8마리가 남아 15명의 조합원이 주말마다 교대로 봉사활동을 하며 케어하고 있다. 조합원 박지원 씨는 “사실 40~50마리씩 돌보는 분들도 있기 때문에 8마리가 뭐가 그렇게 힘드냐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애들을 잘 치료해서 죽을 때까지 보살피자는 마음으로 모여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합에서 가장 경계하고 신경 쓰는 것도 바로 그 지점이다. ‘애니멀 호더’(동물을 모으는 것에는 집착하지만 정작 보살피는 것에는 소홀한 사람)가 되지는 말자는 것. 길고양이를 구조할 때도 끝까지 책임지지 못할 거라면 섣불리 나서지 않는다. 고양이가 입양처를 찾지 못하면 구조자 집에 자연스레 눌러 앉게 된다. 지원 씨는 “불쌍하니까 무작정 구조에 나서는 분은 우리 조합이랑 뜻이 맞지 않는다”면서 “제가 지금 원래 있던 가정묘와 구조된 고양이, 임보하고 있는 고양이까지 하면 12마리가 있어 조합에서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다”고 말했다. 조합원들은 서로에게 끊임없이 ‘지금 애니멀 호더의 경계에 와 있는 것 같다. 우리의 삶이 있어야 고양이도 챙길 수 있다’고 말해 준단다.
온천냥이들에게 들어가는 비용은 모두 조합원 회비에서 충당하고 있다. 후원을 받긴 하지만 꾸준히 들어오지 않는다. 자발적으로 비용을 해결하고, 소통하기 위해 고양이 장난감 등을 만들어 바자나 플리마켓에서 판매하기도 한다. 길고양이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온천냥이 캐릭터도 만들었다. 이를 통해 길고양이 캠페인과 인식 개선에도 힘쓰고 있다.
최근 부산에서 열린 사회적 경제 박람회에 참여하기도 했다. 지원 씨는 “사회적 기업 중 반려동물 기업으로 우리만 참여했는데, 지금까지 해왔던 일들이 헛된 일이 아니라 의미 있는 일이었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조합원들끼리 더 잘하자, 노력해 보자며 힘을 내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저희는 길고양이들이 해코지당하지 않는 세상에서 사람과 어우러져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이 됐으면 좋겠다는 목표로 앞으로도 활동을 지속할 예정입니다.”
김수빈 부산닷컴 기자 suvely@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