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남의 영화세상] 우주를 유영하는 ‘더 문’
영화평론가
‘신과 함께’ 김용화 감독 신작
우주로 떠난 ‘우리호’가 배경
달과 우주 공간 생생히 표현
무중력 상태 실감 나게 연출
지옥인지 천국인지 헷갈리는 칠흑 같은 어둠과 고요의 공간. 누구도 가보지 못한 미지의 공간 우주에서 유성우가 우수수 떨어진다. 유성우가 달 표면과 부딪칠 때마다 지뢰가 터지듯 사방을 무섭게 부숴댄다. 달에 착륙한 탐사 차량이 유성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질주한다. 손에 땀이 나게 하는 박진감과 스릴 넘치는 장면. 스크린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영화.
한국 최초 달 탐사 소재 영화인 ‘더 문’이 개봉하면서 오랜만에 여름 극장가에 활력이 넘친다. 특히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들 작품이 연이어 관객을 만나고 있다. 무엇을 먼저 봐야할지 행복한 고민에 빠진다. 바다에 던져진 생필품을 건지며 생계를 이어가던 사람들의 이야기 해양범죄활극 ‘밀수’, 영화 ‘끝까지 간다’ ‘터널’과 넷플릭스 시리즈 ‘킹덤’을 연출한 김성훈 감독의 ‘비공식작전’, 대지진으로 서울이 폐허가 되고 유일하게 남은 황궁 아파트에 생존자들이 모여들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콘크리트 유토피아’까지. 올여름 한국 영화도 모처럼 생기를 띠는 듯 보인다.
그 중 ‘신과 함께’ 시리즈를 연출한 김용화 감독의 ‘더 문’은 한국영화사에서 보기 드문 장르물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감독은 ‘한국인이 달 표면에 착륙한다면?’이라는 상상력을 담은 SF 장르로 돌아왔다. 전작에서는 저승세계라는 공간을 그렸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우주와 달을 주요 배경으로 삼고 있다. 달 표면 묘사뿐 아니라 역동적 우주 액션을 버무려 한국적 감성으로 흥미롭게 풀어냈다. 익숙하지만 새로운 방식이 분명하다.
영화는 2029년 한국 최초 유인 달 착륙 임무를 위해 출발한 ‘우리호’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우리호가 태양 흑점 폭발로 생긴 우주 폭풍으로 좌초되면서 우여곡절 끝에 홀로 살아남은 ‘황선우’가 지구로 돌아오려고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달에 남겨진 선우와 그를 지키기 위해 지구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지구에서 분투하는 인물은 바로 5년 전 달 탐사선 ‘나래호’ 발사 실패의 죄책감에 세상을 등지고 소백산 천문대에 들어가 살던 ‘김재국’이다. 달 탐사를 포기하며 떠났던 재국이 달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선우를 위해 센터로 돌아와 구조작전을 지휘하며 영화는 본격적인 서사로 흘러간다. 이때 한국의 힘만으로 선우를 구할 수 없단 것을 알게 된 재국이 미 항공우주국(NASA)의 간부인 ‘윤문영’에게 도움을 요청하면서 영화 세계는 보다 확장된다.
영화 ‘더 문’의 순제작비는 286억 원으로 올여름 한국 블록버스터 개봉작 중 한 편이다. 촬영 전 제작 단계에서 전문가들 의견을 토대로 과학적 검증에 공을 들였으며, 실제 나로우주센터를 기반으로 세트를 구현했다고 전해진다. 또 실제 NASA가 쓰는 부품과 소재를 가져와 영화에 한층 몰입감과 사실감을 높였다. VFX(시각특수효과) 기술도 극적 재미를 높이는데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러니까 우주의 디테일을 담은 이 영화를 가능하다면 극장에서 경험해 보기를 권하고 싶다. 달과 우주라는 공간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우주 관련 SF 콘텐츠가 몇 편 나오기는 했지만, 아직 할리우드에 못 미치는 예산이나 기술력 부족 등으로 관객들 눈높이에 맞추긴 어려운 건 사실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우주의 무중력 상태가 실감이 난다. 카메라도 함께 유영하듯 움직이면서 관객이 우주 공간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만든다. 한 번도 간 적 없는 우주를 마치 가보기라도 한 것 같은 기시감까지 들 만큼 기술력이 도약한 건 분명하다. 신파적 감성, 구태의연한 서사가 발목을 붙잡는단 점에서 다소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러나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의 모습이 뭉클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만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