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시선으로] 모든 아이가 안전한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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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숙 동아대 젠더·어펙트연구소 조교수

‘나이를 먹었구나’ 느낄 때가 있다. 길에서 아기를 보면 어느새 웃으며 말을 걸고 있는 낯선 나를 발견할 때 그렇다. 아기 동영상은 또 어떤가. 언젠가부터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꼭 열어 보며 미소를 짓는다. 그다지 아이를 좋아하는 편도 아니었고, 내 자식 키울 때는 하루하루 허덕이느라 이쁜지 어떤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던 나였는데, 세상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아기는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고 행복하게 만든다. 이게 바로 생명의 힘인가 보다. 이토록 예쁜 아이들이건만 영아살해니 아동학대니 요즘 뉴스에 나오는 온갖 험악한 이야기들에 숨이 막힌다. 아이들을 잘 돌보고 안전하게 키울 수 없는 사회에서 어떻게 미래를 꿈꾸겠는가. 단지 그 부모를 비난하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될 리 없다. 이 땅에 태어나는 아이들이 건강하고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 이 땅에서 태어났지만 아무런 권리도 누리지 못한 채 매일 불안에 떨고 있는 아이들이 있다. 바로 미등록 이주 아동들이다. 2만 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는 이 아이들은 부모가 불법체류자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권리 바깥에 놓여 있다. “저는 한국에서 유령으로 지내 온 것이나 마찬가지에요. 살아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어요”라는 어느 미등록 이주아동의 말은 이들이 놓여 있는 안타까운 상황을 잘 보여 준다. 그나마 유엔아동권리협약에 의거해 학습권이 주어져 고등학교까지는 다닐 수 있다. 그러나 생활인으로서 온전히 살아가기 힘들다. 주민등록번호를 부여받지 못해 핸드폰을 만들 수 없고,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해 병원에 가기도 힘들고, 제대로 된 일자리를 얻을 수도 없다. 더욱이 성인이 되면 언제든 강제퇴거명령이 내려질 수 있다. 한국에서 태어나거나 자란 실질적인 한국인이지만 말도 안 통하고 아는 이도 없는 부모의 국적국으로 갑자기 추방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간다.

저출산이다 인구절벽이다 걱정을 늘어놓은 지 오래다. 정부는 매년 저출산 대책으로 대규모 예산을 배정하고 있지만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현실이 이런데, 언제까지 버젓이 존재하는 이주 아동들의 고통에 눈을 감을 것인가. 영국에서는 부모가 모두 외국인이어도 아동이 만 10세 이상 만 18세 이하이고, 태어난 후 10년간 영국에서 거주하면 부모의 체류자격과 무관하게 국적 취득 기회를 준다고 한다. 이제 우리도 영국처럼 장기체류 이주 아동에게 체류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생각해 봐야 할 때는 아닐까. 나아가 보편적 출생등록제의 도입도 고려해 봐야 한다. 이 나라에서 태어난 아이라면 누구든 차별받지 않고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나라, 이제 그런 나라를 꿈꿔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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