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지금 안 따면 다 버려야 해” …‘찜통하우스’ 못 떠나는 농민들

강대한 기자 kd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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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속 밀양 하남읍 고추 농가

비닐하우스 안 42도 찜통더위
“시기 놓치면 물러져서 못 팔아”
사람 잡는 더위에도 일 못 놓아
노인 많은 농촌, 폭염에 무방비
올해 경남서 온열질환 4명 숨져

40도가 넘는 비닐하우스 안에서 농민들이 폭염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경남 밀양 하남읍의 한 비닐하우스 고추 수확 작업 모습(위)과 고추나무를 빻기 위해 건조작업 중인 모습. 강대한 기자 kdh@ 40도가 넘는 비닐하우스 안에서 농민들이 폭염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경남 밀양 하남읍의 한 비닐하우스 고추 수확 작업 모습(위)과 고추나무를 빻기 위해 건조작업 중인 모습. 강대한 기자 kdh@

“더워도 우얄끼고. 지금 안 하면 그냥 내다 버려야 하는데.”

2일 오전 11시 경남 밀양시 하남읍의 한 고추 농가. 뙤약볕이 내리쬐는 비닐하우스 주변엔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그늘에 숨어도 가만히 서 있기조차 벅찬 8월의 폭염. 하우스 안 온도계 눈금은 42도를 가리킨다. 밖은 ‘불볕더위’, 안은 ‘찜통더위’인 셈이다. 길이 100m, 폭 15m, 넓이 1300㎡ 규모의 하우스엔 시뻘겋게 달아오른 고추가 그득하다. 50~60대 여성 3명이 수확 작업으로 분주하다.

더위를 피해 이른 아침 작업을 시작한 게 벌써 4시간째.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햇볕을 막아줄 차광막을 덮고 환기창까지 모두 연 뒤 식염포도당과 얼음물로 목을 축이며 수시로 하우스 안팎을 오가지만 더위를 식히기엔 역부족. 한 인부는 “하루도 못 버티고 내빼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견디면서 익숙해지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고 했다.

하우스 바로 옆에 냉장고와 선풍기가 마련된 농막이 있지만, 마음 놓고 쉬는 이는 없다. 농장주 신상환(62) 씨는 “아무리 더워도 지금 따야 한다. 시기를 놓치면 상품성이 떨어진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신 씨는 하우스 2개 동에서 한 해 20t 정도 고추를 생산한다. 원래 청초(청양고추)를 납품했지만, 가격이 폭락하자 수확을 미뤄 홍초로 만들었다. 여기서 더 지체하면 속이 물러져 판매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수확을 마친 하우스 고추대는 바짝 말려서 뽑아 빻은 뒤 땅에 묻는데, 잘 빻기 위해선 새벽이슬이 마른 대낮에 작업해야 한다. 이때 하우스 내부 온도는 50도에 육박한다. 이래저래 더위와 맞서야 하는 이유다. 신 씨는 “구급차가 2~3일꼴로 마을이나 밭 주변을 지나다니는 걸 볼 때마다 걱정이 앞서지만 쉬는 것도 마음이 편치 않아 일단 나서고 본다”면서 “정신없이 일하다 보면 어질어질할 때도 있다”고 털어놨다.

비닐하우스 내 온도계. 강대한 기자 kdh@ 비닐하우스 내 온도계. 강대한 기자 kdh@

긴 장마에 이어 무더위가 이어지면서 수확기를 맞은 농민들은 폭염과 사투를 벌인다. 때를 놓쳐선 안 된다는 생각에 좀처럼 일손을 놓지 못한다. 하지만 자칫 온열질환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 있는 만큼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2일 현재 경남 전 시군에는 폭염경보가 발효된 상태다. 체감온도 35도 이상의 덥고 습한 아열대성 폭염이 다음 주 초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경남에서는 고령인구가 많은 농촌지역을 중심으로 벌써 온열질환자가 잇따르고 있다.

올해 경남에서 발생한 온열질환자는 총 102명이다. 열사병 18명, 열탈진 66명, 열경련 8명, 열실신 10명으로 집계됐다. 대부분 증상 인지가 느린 고령층과 심뇌혈관질환 기저질환자다. 전체 환자 수는 경기도(306명), 경북(109명)에 이어 전국에서 3번째이지만, 사망자는 4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다.

지난 5월 창녕군 양파농장에서 일하던 40대 중국인을 시작으로 7월 밀양 하남읍 비닐하우스에서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남성과 남해군 서면에서 밭일하던 80대 여성, 같은 달 30일 남해군 남면에서 밭일하던 80대 남성이 연거푸 숨졌다.

경남도는 ‘특별 폭염대책’을 세우고 전담팀 가동에 들어갔다. 앞서 지원한 폭염대책 예산 집행 현황을 점검해 필요시 추가 예산을 지원한다. 무더위 쉼터와 그늘막 운영 실태도 상시 점검한다. 또 농업분야 종사자의 인명 피해 예방을 위해 농업 현장 지도, 예찰을 강화한다.

경남도 관계자는 “낮 12시~오후 5시에는 야외 작업을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면서 “홀몸어르신 등 취약계층과 고온이나 야외 노출이 불가피한 사업장 노동자를 중심으로 현장 대응력을 집중해 피해가 최소화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강대한 기자 kd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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