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재파의 생각+] ‘없었던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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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대 기초교양대학 교수·공모 칼럼니스트

최근 사회적 의혹, 뭉개기 대처 횡행
당사자 반성은 없고, 책임만 회피
피한다고 해서 국민 속일 수는 없어

최근 한국 사회에서 유행하는 정치적 해법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없었던 일’로 하기이다. 이슈가 되고 있는 사안에 대하여 적극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하기보다 사안 자체를 없었던 일로 만들어 그 문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다. 이 전략은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첫 번째 유형은 이슈가 되는 사안을 처음부터 숨기고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문제 자체를 없었던 일로 만드는 것이다. 대표적 사례로는 무속인의 대통령 관저 선정 개입 의혹 사건을 꼽을 수 있다.

무속인 천공이 대통령 관저 이전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불거지자, 대통령실은 의혹을 제기한 김종대 전 정의당 의원과 부승찬 전 국방부 대변인, 그리고 관련 내용을 최초 보도한 기자들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했다. 이에 따라 경찰 수사가 시작됐다. 수사 결과 천공은 나타나지 않았지만, 풍수 전문가이자 관상가인 백재권 사이버한국외대 겸임교수가 육군총장 공관을 답사한 사실이 밝혀졌다.


특히 백 교수가 답사할 때 경호처장과 청와대 용산 이전 TF팀장이 동행하였는데, 이는 대통령실이 고발 당시 이미 의혹을 받고 있는 인물이 천공이 아니라 백 교수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대통령실은 처음 의혹이 제기되었을 때 왜 이런 사실을 공개하여 의혹을 풀지 않았을까. 만약 사실이 드러난다면 정치적 공세를 받을 게 분명하기 때문에 이 문제를 숨겨 없었던 일로 만들려고 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러나 문제를 숨기고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는 사실이 없었던 일로 되지는 않으므로 이는 올바른 정치적 해법이 아니다.

두 번째 유형은 진행 중인 사안일 경우, 이를 백지화해 없었던 일로 하는 것이다. 대표적 사례로는 서울-양평 고속도로 사업 백지화가 있다.

지난달 6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서울-양평 고속도로 사업의 전면 백지화를 선언했다. 김건희 여사 일가에게 특혜를 주고자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한 이 고속도로 노선의 종점을 바꾸었다는 야당의 의혹 제기 때문이다. 원 장관은 김 여사 일가가 소유한 선산을 처분하지 않는 이상, 야당의 선동이 끊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원인 그 자체, 즉 고속도로 사업 자체를 백지화해 없었던 일로 하겠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이 전략도 좋은 정치적 해법이라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충분한 설명이 없어서 도리어 의혹만 증폭되고, 또 이 문제에서 비롯한 다른 사회적 갈등이 끊임없이 파생되어 나타나기 때문이다.

세 번째 유형은 문제가 되는 사안을 통해 얻은 이익을 되돌려 주어 없었던 일로 하자는 것이다. 대표적 사례로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아들의 석사 학위 반납과 딸의 의사 면허 반납을 들 수 있다.

조 전 장관의 아들은 연세대 대학원 입시에 사용되었던 인턴 증명서가 문제가 되자, 지난달 10일 석사 학위를 반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딸 조민 씨도 지난달 5일 자신의 의사 면허를 반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학위와 의사 면허는 자진 반납 제도 자체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학위와 의사 면허를 자진하여 반납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모종의 의도를 가진 정치적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선언의 의도는 문제가 되는 행위를 자진해 되돌려 줌으로써 해당 사안을 없었던 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부당하게 얻은 이익을 돌려준다고 하여 잘못한 일 자체가 없었던 일로 되지는 않는다. 따라서 이 유형의 전략도 결코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다.

지금까지 살펴본 ‘없었던 일로 하기’ 전략은 사과를 훔치는 행위에 비유할 수 있다. 첫 번째 유형은 사과를 훔치고 포도를 훔치지는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고, 두 번째 유형은 사과를 훔치다 걸리자 훔치지 않았다고 큰소리치고는 사과를 안 사겠다고 우기는 것이다. 세 번째 유형은 사과를 훔친 뒤 다시 돌려주고, 이미 돌려줬으니 훔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격이다. 어느 경우이든 훔친 행위, 즉 잘못된 행위가 없었던 일로 바뀌지 않는다. 따라서 없었던 일로 하기 전략은 애초에 정치적 해법이 될 수 없다.

어떤 문제가 생기면 우선 발생 원인을 정확히 분석하고, 잘못된 점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잘못을 저지른 이가 있다면 적법한 절차에 따라 처벌을 받고, 제도에 문제가 있다면 구조적인 개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발생 원인에 따라 해결책을 마련한 후 이를 실천해야 한다. 이것이 국민들이 기대하는 올바른 정치적 해법이다. 없었던 일로 하자는 식의 접근은 해법이 되기는커녕 국민을 기망하는 행위밖에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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