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기장갈매기
가수 나훈아는 국회의원 제의를 받았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여당 한 당직자가 저녁 약속을 잡자고 하면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정치를 좀 하셔야 되겠습니다”라고 설득했다고 한다. 나훈아의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울긴 왜 울어’를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잘 부른다고 생각하십니까. 마이클 잭슨이 저보다 잘 부릅니까?” 나훈아는 자신이 정말로 국가와 민족을 위한다면 노래를 불러야 한다고 말했다. 그 뒤 나훈아는 훈장도 사양했다. 가수는 영혼이 자유로워야 하는데, 훈장 무게를 어떻게 견디냐는 이유에서였다.
이건희 전 삼성 회장 일가의 파티 초청을 거절하는 연예인은 거의 없었다. 참가한 가수는 보통 2~3곡을 부르고 3000만 원쯤 받아 갔다. 이 액수가 적지 않기도 하지만 삼성 이 전 회장이 불러 주니 대개 영광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김용철 변호사가 쓴 〈삼성을 생각한다〉에 따르면 유일한 예외가 나훈아였다. 아무리 거액을 주겠다고 해도 나훈아를 불러 노래를 부르게 할 수가 없었다. 나훈아는 “나는 대중 예술가다. 따라서 내 공연을 보기 위해 표를 산 대중 앞에서만 공연하겠다. 내 노래를 듣고 싶으면, 공연장 표를 끊어라”라고 했단다. 그래서 가황(歌皇)이다.
나훈아는 방송 출연이나 인터뷰를 하지 않는다. 2020년 9월 드물게 〈월간조선〉과 한 인터뷰에 눈에 띄는 대목이 있었다. ‘고향이 어디냐고 묻자 다음과 같은 대답이 주르르 흘러나왔다. “부산시 동구 초량 2동 415번지 7통 3반입니다.” 부산 사람이 아니랄까 봐 몹시 겁이라도 먹은 사람 같았다.’ 2017년에 나온 노래 ‘아이라예’에는 부산 사람들에게는 불필요한 ‘아닙니다’라는 부연 설명이 달렸다. 앞서 발표한 ‘어매’는 어머니의 부산 지역 말이다. ‘내 고향은 부산입니더’라는 노래도 있다.
데뷔 56주년을 맞은 그가 최근 새 앨범 ‘새벽’으로 돌아왔다. 총 여섯 곡 모두 뮤직비디오를 만들었는데 그중 현재 조회수 143만의 ‘기장갈매기’가 가장 인기다. 하와이안 셔츠와 찢어진 청바지의 나훈아가 기장 바닷가에서 조폭들과 싸워 물리치는 모습이 액션 영화를 보는 것 같다. 나훈아의 갈매기 춤은 웃음을 자아내게 만든다. 역시나 직접 작사 작곡한 기장갈매기 가사에는 오륙도, 해운대, 영도, 남천동, 다대포, 송도, 광안대교와 기장 등 부산의 명소가 빠짐없이 등장한다. 기장갈매기, 나훈아의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고 읽는다.
박종호 수석논설위원 nleader@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