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갈 곳이 없지, 취향이 없나… ‘핫플’ 찾는 부산 어르신 [MZ 편집국]
수영구 70세 이상 전용 극장 인기
집 근처 접근성 높고 부담도 없어
새로운 장소 생기면 노년도 활기
부산 전역 확대 위해 예산 늘려야
부산에서 ‘지하철 장거리’ 여행 대신 새로운 즐거움에 빠져든 노인들이 있다. 시장이나 공원이 아닌 ‘70세 이상 전용 극장’이 입소문을 탔고, MZ 세대처럼 SNS에서 여러 세대와 소통하는 노년층도 늘었다. 주거지 인근에 새로운 공간이 들어서고 디지털 교육 등이 활발해지면 ‘노년의 일상’도 다채로워진다는 걸 보여준다.
지난 1일 오후 2시 30분께 부산 수영구 수영동 ‘오디오도서관&수영성극장’. 좌석이 8개인 단체 영화관에서 노인 3명이 ‘도깨비 할매’ 옥분(나문희)과 공무원 민재(이제훈)가 나오는 영화 ‘아이 캔 스피크’에 빠져들었다. 뒤이어 나타난 노인 2명은 한국 영화 ‘세자매’ DVD를 추천받아 2인 영화실로 향했다. 수영성극장 담당 직원은 “가족 영화가 인기가 좋다”며 “방금 온 두 사람은 어제도 왔다”며 웃었다.
지난 4월 개관한 ‘오디오도서관&수영성극장’은 부산에서 보기 드문 유형의 공간. 이름은 인근 수영사적공원 일대 문화재 '경상좌수영성지'에서 따왔다. 70대 이상 수영구 주민만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2층은 4개 영화 관람 공간과 옛 극장 느낌 매표소와 소파로 꾸몄고, 1950년대 이전 영화까지 다양한 DVD가 비치됐다. 입소문이 나면서 지난달 141명, 6월에는 175명이 극장을 이용했다.
1층 ‘오디오도서관’에는 3개 오디오북 감상실과 턴테이블이 놓인 음악감상실이 있었다. 비틀스와 사이먼 앤 가펑클, 나훈아와 남진 등 다양한 가수의 LP를 놓아뒀다. 주택을 리모델링한 2층짜리 극장과 도서관은 국·시·구비 9억 9400만 원을 들여 만든 공간이다.
노인들은 주거지와 가까운 곳에 생긴 전용 시설을 부담 없이 찾고 있다. 수영구 망미동에 사는 김종선(75) 씨는 “배산역에서 지하철로 두 정거장 거리라 오기가 편하다”며 “화요일마다 오는데 영화 ‘미나리’가 참 괜찮았다”고 했다. 이어 “더운 날 집에 가기도 싫은데 친구들과 영화를 볼 수 있는 공간이 생겨서 좋다”고 말했다.
하지만 부산에서 노인을 위한 새로운 공간은 여전히 드문 편이다. 일례로 부산시가 ‘15분 도시’ 사업으로 노인 모임 공간인 ‘하하센터’ 설치를 추진하는데, 올해는 시·구비 24억 원을 투입해 해운대구·사하구 등 3곳에 시범적으로 조성한다. 경로당이나 복지관을 꺼리는 50대 중반 이상이 자유롭게 동아리 활동 등을 즐길 공간이 목표지만, 부산 전역으로 확대하려면 더 많은 예산과 시간이 필요하다.
SNS에 일상을 공유하며 다양한 세대와 소통하는 노인도 있다. 디지털 교육이 활발해지면서 SNS를 활용하는 노인이 늘었다. 영도구에 사는 A 씨는 인스타그램에 ‘오운완(오늘 운동 완료)’ 영상을 올리는 즐거움에 빠졌다. 그는 일명 ‘산스장(산속에 헬스장처럼 운동기구를 갖춘 공간)’에서 운동하는 모습을 올린다. 팔로워가 2000명에 가까워졌고, 한 영상은 조회수 150만 회를 기록했다. 중구 남포동 양복점에서 재단사로 일하는 여용기(70) 씨는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5만 명인 유명 인사다. 남다른 패션 감각을 자랑하는 게시물로 젊은 세대에게 큰 관심을 받았다.
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 ,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