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 뷰] 다르지만 같은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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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희 한국해양대 총장·기계공학 박사

“엄마 ㅠㅠ 너무 힘들어”라고 엄마에게 남긴 마지막 메시지. 지난달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교사가 스스로 유명을 달리한 일이 있다. 이 사건은 교육 현장을 나타내기도 하고 있지만 사회 전반에 깔린 경쟁 의식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봐야 한다. 학교에서 배우는 공교육 선생보다 방과 후 학원에서 배우는 사교육 선생을 더 중시하는 현상은 이미 오래전의 일이 되었다. 치열한 사교육 경쟁에서 인성 교육보다는 실력으로 무장된 내 아이를 중시하는 현상이 이번 ‘연필 사건’의 형태로 나타난 결과로 봐야 한다. 내 자식은 이겨야 하며 조금이라도 손해를 본다면 절대 용서 못 하는 의식의 뿌리가 어린 교사의 가슴에 박혀버린 일로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학생의 공감 능력 부족으로 발생한 결과에 대한 엄한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교육 현장은 학교 자체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의 문제로 봐야 한다. 우리 모두가 내 자식만이 더 소중하다고 하는 의식의 뿌리를 가지고 있지 않는지 되돌아 봐야 한다. 그 어린 교사가 우리의 딸일 수도 있음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려 온다.

서이초, 송파구 세 모녀, 정인이 사건 등

복지 사각지대 드러났지만, 현실 여전해

주변 힘든 사람 있는지 살피고 보듬어야

사회 구성원, 관심과 공감 노력 기울이길

“주인아주머니께…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메모를 남기고 떠난 세 모녀가 생각난다. 서울 송파구 세 모녀 사건(2014)이다. 어머니는 퇴근길 빙판길에 넘어져 팔을 다친 뒤 일자리를 잃었고, 큰딸은 고혈압과 당뇨로 건강이 좋지 못한 데다 작은딸은 아르바이트를 전전했지만 결국 생활고를 이겨 낼 수 없었다. 집세 38만 원과 매달 공과금 20만 원가량을 한 번도 밀린 적이 없었던 세 모녀의 마지막 메모로부터 사회 구성원으로서 최선을 다하려 노력했다는 그들의 메시지가 아직도 눈에 걸린다. 어머니가 일자리를 잃었지만, 제도적 제약으로 고용보험과 산재보험 대상이 못 됐고 부양의무제가 버티고 있는 기초생활보장제에서도 비켜감으로써 하루아침에 수입원이 사라져, 더 이상 도움의 손길을 잡을 수 없었던 절망적 상황을 견디기 어려웠던 탓 일게다. 당시에 사회 고용안전망 및 복지 사각지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으로 크게 부각되어 공무원 사회에 경종을 울렸지만, 여전히 근본적 뿌리가 바뀌지 않은 채 가슴 아픈 일들이 이어져 왔다.

“세상 살기 너무 힘듭니다”라는 마지막 메시지를 집주인에게 남기고 세상을 떠난 수원 세 모녀의 일(2022)도 그렇다. 어머니는 암 치료 중이었고 두 딸 역시 각각 희귀 난치병 등을 앓아 일상생활이 어려웠던 가족의 일이다. 이들도 사회 구성원으로서 최선을 다해 살아왔지만 생활고의 한계로 세상을 떠났다. 이 사건들은 우리 사회가 ‘관심의 뿌리’를 내릴 수 있는 밭이 없기 때문으로 봐야 한다.

관심의 뿌리가 더욱 필요했던 일이 기억난다. 정인이 사건(2020)이다. 홀트아동복지회에서 입양한 8개월의 여자아이를 입양 부모가 장기간 심하게 학대하여 16개월이 되었을 때 죽음에 이르게 한 일이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방영된 CCTV 화면에 비추어진 정인이의 마지막 모습은 아직도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다. 퇴소 시간까지 마지막 남은 정인이를 어린이집 교사가 불렀을 때, 넋을 놓은 채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던 어린 아이의 모습에 왠지 죄인처럼 느껴졌다. 더 이상 어른들에게 기댈 수 있는 희망을 정인이는 더 이상 바라지 않는 것처럼 느꼈다.

서이초등학교, 송파구 세 모녀, 수원 세 모녀, 정인이 사건들은 서로 다르지만 같은 뿌리가 있다.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책임져야 할 관심의 뿌리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너무도 서로를 눈치 보는 사회로 되어버렸다. 조금만 실수를 하면 사회적 비난 대상이 되어 버리는 풍조로 인해 사회복지를 담당하는 공공기관의 구성원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민원이나 사회적 문제 해결을 위해 공무원이 나름의 방안을 마련하지만, 제도적 한계는 여전히 존재한다. 사회적 비난은 공조직의 시스템을 흔들고, 이로 인해 공무원의 조그만 실수는 바로 승진 누락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공무원의 조그만 실수를 포용하기 위한 적극 행정 면책 제도가 마련되어 있지만 지금의 승진 경쟁 시스템에서는 개선이 쉽지 않아 보인다. 이 모든 것이 치열한 경쟁 사회의 뒷면과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행정의 유연성을 인정해 주는 사회적 공감의 뿌리가 필요한 때이다.

국가는 국민이 인정하는 사회적 공감이 없이는 어떠한 정책도 추진하기 어렵다. 따라서 사회적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국가를 비난하기에 앞서서 우리 스스로 관심의 뿌리를 잘 내리고 있는지 살펴볼 일이다. 날씨가 무덥다. 날씨로 여러 모로 쉽게 포기할 수 있는 시기이다. 힘들지만 가까운 주변에 더 힘든 사람이 있는지 관심의 뿌리를 내려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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