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예쁘다는 말 대신…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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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가수 시네이드 오코너 별세
외모가 더 주목받는 것 싫어 삭발해
사회적인 메시지 내며 영향력 발휘
여성에 대한 칭찬은 외모로 집중
‘예쁘다’로 통하던 건 이제 옛말
여성의 성취 다양하게 접근해야

지난달 26일 뛰어난 재능을 가진 여성 뮤지션이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팬으로서, 갑작스러운 별세 소식은 충격이었다. 하지만 인기 스타가 아니라고 판단했는지 한국 대다수 언론은 기사를 내지 않고 조용히 넘어갔다.

주인공은 아일랜드 출생의 가수, 시네이드 오코너이다. 1987년 데뷔한 그녀는 1990년 ‘낫 씽 컴페어즈 투 유(Nothing compares 2 U)’라는 노래가 엄청난 히트를 기록하며 당시 세계적인 인지도를 얻었다.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듣는 이들을 순식간에 음악에 빠져들게 했고 자신만의 감성으로 노래를 해석하는 능력도 돋보였다.


앞으로 펼쳐갈 그녀의 음악 세계에 관심이 몰릴 것을 기대했으나, 사실 수많은 매체와 대중은 음악보다 아름다운 외모에 스포트라이트를 두게 된다. 외모에 대한 관심이 싫었던 시네이드는 외모를 망가뜨리기 위해 삭발했고 이 모습으로 평생 살았다. 뮤직비디오에선 일부러 표정을 찡그려 안 예뻐 보이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그녀가 더 주목받은 건 세계적인 히트곡을 낸 이후 행보 때문이다. 가톨릭계의 아동 성추행 사건 은폐를 항의하기 위해 미국 인기 TV쇼에서 교황의 사진을 찢는 퍼포먼스를 벌여 큰 논란이 됐다. 이 사건으로 가톨릭국가에선 그녀의 노래가 금지곡이 된다. 걸프전 반대를 비롯해 미국의 우월주의 정책을 대놓고 비판해 이후 미국 뉴욕 공연에서 격렬한 야유를 받지만, 무반주로 담담하게 차별 반대 노래를 부른 영상은 잔잔한 울림을 전해준다.

음악계에선 시네이드가 기존 가수들의 행보를 따라갔다면, 부와 명성이 보장되는 대스타가 될 수 있었으리라 추측한다. 사실 시네이드의 행동이 더 대단해 보이는 이유가 있다. 그녀는 어린 시절 보살핌을 받지 못한 채 불행하게 보냈다고 한다. 이런 그녀가 혼자의 행복보다 세상을 걱정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점에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놀라운 학문적 성취를 일구었지만, 예쁜 얼굴 때문에 오히려 성과가 묻힌 여성의 사례도 있다. 지난달 한국을 방문해 선한 영향력을 전한 제인 구달 박사가 그중 한 명이다.

세계적인 동물학자이자 침팬지 연구자, 환경운동가인 그녀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다. 여성이자 고졸, 비전공자라는 이유로 밀림에서 4년이나 고생하며 얻은 연구 결과는 무시당했고 심지어 ‘금발 미녀는 침팬지를 좋아한다’는 성희롱에 시달려야 했다. 아프리카에 머물며 연구를 이어갔지만, 이후에도 대중은 그녀의 연구보다 연애, 결혼, 이혼, 외모 변화에 더 큰 관심을 보였다는 사실은 안타깝다.

제인 구달은 이제 전 세계 어린이 청소년이 닮고 싶은 인물이 됐다. 은백색 머리의 할머니지만,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120여 개국이 참여하는 환경단체 ‘뿌리와 새싹’을 이끌고 있고, 이번 한국 방문에서도 여러 행사에 참여해 환경과 변화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제인 구달은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세상은 전보다 암울하지만 그렇다고 굴복해서는 안 된다. 모든 사람들이 매일 각자의 선택을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라고 말했다. 점점 더 나빠져 가는 세상에 대한 희망이자 스스로 편견을 뚫어낸 경험자의 조언이라 묵직한 힘을 가지고 있다.

얼마 전 참석한 모임에서 신문사의 젠더데스크로 일하고 있다고 소개하니 대뜸 질문이 있다고 한다. 여성에게 칭찬하는 목적으로 “예쁘다”라고 말하는데 젠더 감성에 문제가 되는 거냐고 묻는다. 말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우리 사회는 오래도록 여성에 대한 칭찬은 대부분 “예쁘다”라는 한 마디로만 수렴된다는 사실이 문제라고 답했다.

한때 “여자는 예쁘면 다 용서된다”라는 말이 공공연히 통하는 시대가 있었다. 학창 시절, 반에서 꼴찌였던 여학생에게 선생님이 “넌 예뻐서 공부 못해도 잘 살 거야”라는 말을 대놓고 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2023년 현재에선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말이다.

다음 달 아시안게임이 개막한다. 4년간 대회를 준비한 선수들의 반가운 메달 소식이 들려올 것이다. 여자 선수들의 기사 제목에 더는 ‘미녀 ○○’ ‘얼짱 ○○’이라는 단어로만 대표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흘린 피·땀·눈물과 경기 내용은 사라지고 예쁜 얼굴로 마무리되는 건 당사자로서 억울해지는 순간이다.

더불어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 여기자의 칼럼에는 내용과 상관없이 외모 품평 댓글이 달리는 것도 안타깝다. 특히 여성·젠더 관련 기사와 칼럼에는 ‘이렇게 생겼으니…’로 시작되는 악플이 자주 보인다. 그런 악플을 쓰는 본인이 가장 못난 사람이라는 걸 알면 좋을 텐데….

김효정 젠더데스크 teresa@busan.com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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