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 비위 막자며 전 직원 글짓기 숙제 낸 울주경찰 행정 ‘비틀’
‘내가 잘리면’ 등 예시 3개 공개
내용 심사 후 청장 포상도 밝혀
취지 이해 불구 방법 유치 여론
‘폭염·치안 가중서 황당’ 비판도
‘내가 만약에…음주운전 단속에 걸렸다면?’ 울산 울주경찰서가 경찰의 음주 비위를 예방하자며 전 직원에게 이런 주제로 짧은 글짓기를 하도록 했다. 폭염과 치안 불안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때아닌 ‘글짓기 숙제’를 받아 든 일선 경찰관들 사이에 “수박 겉핥기식 대책”이라는 불만이 터져 나온다. 특히 울주서가 글짓기 내용을 심사해 울산경찰청장 장려장 등 포상 방침까지 밝히자, 경찰 안팎에선 “어이없다”는 반응이 꼬리를 문다.
6일 〈부산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울주경찰서는 지난달 말 음주 비위 예방 목적으로 “가상 음주운전자 체험 ‘내가 만약에…’를 주제로 ‘전 직원 1인 1글짓기’를 한다”고 공지했다. ‘내가 음주운전을 했을 때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 상상을 통한 경험, 그 위험성을 스스로 느끼도록 유도’하자는 취지에서다.
울주서는 “내가 음주운전을 했다는 가정하에 어떤 결과가 발생할지, 어떤 느낌일지, 어떻게 행동하고 있을지 등을 추정하는 짧은 글짓기”라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3가지 예시를 공개했다. ‘나 혼자 벌어서 가족들 먹여 살리는데 내가 짤리면(잘리면) 우리 가족은 어떻하나(어떡하나)’를 비롯해 ‘술 마신 것 자체를 후회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 ‘심하게 자책하면서 술 마시기 이전으로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뭐라도 할 수 있겠다며 머리를 뜯고 있을 것이다’ 등이다.
앞서 지난 5월 울산경찰청 소속 한 경찰관이 회식 후 운전대를 잡았다가 경찰의 음주단속에 걸렸고, 지난달 18일에는 울산남부경찰서 지구대 경찰관이 음식점 주차장에서 만취 상태로 승용차를 조금 운전했다가 목격자 신고로 적발됐다.
이에 울주서는 소속 경찰관에 대한 음주 비위를 예방하겠다며 글짓기 등을 골자로 한 자구책을 마련, 시행하는 것이다. 울주서는 또 이달 11일까지 글짓기 내용을 취합해 자체 심사 후 경찰서장 표창, 울산청장 장려장 등을 주고, 수상작은 폴넷 게시판에 올려 홍보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직원들은 ‘취지는 좋은데, 방법이 유치하다’며 공감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인다. 한 일선 지구대 경찰관은 “요즘 폭염에다가 묻지마식 범죄 등으로 온통 비상이 걸린 상황에서 무슨 글짓기까지 해야 하느냐”며 “음주운전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자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우리가 학생도 아니고 이런 ‘겉핥기식 대책’이 과연 효과가 있는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한 여성 경찰관도 “나는 술을 마시지 않는데 이런 우울한 상상까지 하면서 글짓기를 해야 하는 건지…자괴감이 든다”고 전했다. 게다가 울주서의 포상 방침과 관련해 “경찰서장 표창이나 울산청장 장려장 등을 남발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대해 울주경찰서 관계자는 “모든 직원이 음주운전 근절에 참여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판단했다”며 “강제사항은 아닌데 일부 직원이 부담을 느낀 것 같다”고 말했다.
권승혁 기자 gsh0905@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