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예방 빌미 ‘사법 입원’ 추진 논란 [묻지마 흉기 난동]
“법관이 정신질환자 입원 결정”
정부 도입 방침에 학계도 지지
정신질환 치료 체계 개선부터
스스로 치료를 중단한 중증 정신질환자가 흉악 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막자는 취지에서 정부가 강제 입원 성격의 ‘사법 입원’ 도입을 검토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번 사건과 정신질환의 연관성에 대한 우려와 함께 정신질환자의 사법 입원은 기존의 미비한 정신질환 치료 체계 개선 없이는 무책임한 선택이라는 지적도 있다.
6일 경찰 등에 따르면 지난 3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서현역에서 흉기를 휘둘러 구속된 20대 최 모 씨는 2015년부터 대인기피 증세로 5년간 정신과 진료를 받았다. 2020년 조현성인격장애(분열성 성격장애)라고 진단을 받았지만 약을 먹어도 별다른 효과가 없다는 이유로 3년 전 치료를 중단했다. 최 씨는 그를 해치려는 스토킹 집단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그는 범행 전날 흉기를 구입하고 사건 현장을 방문하는 등 계획 범죄 정황도 확인됐다.
정부는 사건 이후 중증 정신질환자의 입원 여부를 사법기관이 결정하는 사법 입원 제도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법무부는 “보건복지부와 협의해 법관의 결정으로 중증 정신질환자를 입원하게 하는 사법 입원제 도입을 검토한다”며 “타인에게 위해를 가할 우려가 큰 일부 중증 정신질환자의 입원과 격리 제도를 실효성 있게 운용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경남 진주시에서 아파트에 불을 지르고, 불을 피해 도망치는 주민을 향해 흉기를 휘두른 ‘안인득 사건’ 이후 사법 입원제 도입이 논의된 적이 있다.
헌법재판소가 2016년 당사자 동의 없는 정신병원 강제 입원을 위헌으로 판결하는 바람에 강제 입원은 까다로워졌다. 2017년 시행된 정신건강복지법에 따라 보호의무자에 의한 ‘보호 입원’을 할 경우 보호의무자 2명 이상의 신청과 서로 다른 병원에 소속된 전문의 2명 이상의 일치된 소견이 있어야 가능하다. 지자체장이 보호와 진단을 신청하는 ‘행정 입원’도 있지만, 소송 등을 우려해 현장에선 꺼리는 것으로 전해진다.
신경정신의학계는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 폐지를 포함한 제도 개선과 중증 정신질환 국가책임제 도입을 주장한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6일 성명서를 통해 '정신건강복지법 응급입원 규정에 따라 사고가 발생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이송이 이뤄지지 못한다. 경찰이나 정신건강복지센터가 할 수 있는 조치는 환자를 설득하는 것밖에 없다'며 초기 현장 대응 인력에게 권한 부여, 전문적 정신건강평가 의무 시행, 경찰에 의한 병원 이송 또는 찾아가는 평가 제도화 등을 건의했다.
정신질환이나 인격장애를 흉악범죄의 직접 원인이라고 보기 어렵고, 현재 정부가 검토하는 사법 입원제는 근본적인 제도 개선 없는 ‘손쉬운 선택’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부산 송국클럽하우스 유숙 소장은 “사법 입원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번에도 조현병이 원인이 아니라 기존에 범행을 계획하는 등 사이코패스 같은 경우”라면서 “입원이나 재활 관련 시스템에 대한 투자가 전혀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사법 입원만 갖다 넣는 건 상당히 무책임한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