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 유토피아’로 관객 찾는 이병헌 “계속 보고 싶은 배우이고 싶어요”
대지진 생존 아파트 주민 대표
영탁의 변화 과정 촘촘히 그려
“계속 보고 싶은 배우 되고 싶어”
충무로 대표 배우를 꼽으라면 이병헌을 빼놓을 수 없다. 작품의 시대나 소재와 상관없이 맡은 캐릭터와 작품에 숨결을 불어넣어 생명력을 입힌다. 9일 개봉한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도 이병헌은 그 역할을 톡톡히 한다. 대지진이 발생한 뒤 모든 게 무너진 상황이 작품의 배경인데, 그 이야기를 이질감 없이 잘 빚어냈다.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병헌은 “긴 시간동안 한땀 한땀 공들인 만큼 완성도 있는 작품이 나왔다”고 밝게 웃었다.
이 영화는 대지진에서 홀로 남은 황궁아파트 주민들의 생존기를 그린다. 김숭늉 작가의 인기 웹툰인 ‘유쾌한 왕따’ 2부인 ‘유쾌한 이웃’을 원작으로 엄태화 감독이 새롭게 만들었다. 이병헌은 주민 대표로 선출되는 ‘영탁’을 연기했다. 이병헌은 영탁의 본래 성격과 권력을 쥔 뒤 변해가는 과정을 촘촘하게 잘 그려냈다. 그는 “마음에 큰 분노와 상실감, 우울감이 가득한 인물”이라며 “주변에 있을 것만 같은 모습으로 시작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32년간 여러 작품을 선보인 이병헌이지만, 이번 영화를 공개하기까지 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 없었다고 했다. 대부분의 장면이 직접 겪어보지 못한 상황과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라 상상에 맡겨 연기해서다. 이병헌은 “경험에서 비롯된 감정은 확신이 있으니 자신 있게 연기한다”며 “반면 느껴보지 않은 감정을 상상하면서 연기할 땐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전까지 여전히 불안하다”고 털어놨다. 그는 “관객들에게 캐릭터의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했는지, 표현한 감정이 설득력이 있는지 걱정이 됐다”고 말했다. 어려운 과정이었지만, 작품이 가진 매력에 빠졌다고. 이병헌은 “재난 상황에서 벌어지는 블랙코미디”라며 “긴장을 놓을 수 없는데 이상하게 피식피식 웃게 되는 매력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아주 묘한 이 매력이 참 좋더라”고 강조했다.
스크린 속 영탁의 외형 변화는 또 하나의 재미 요소다. M자형 이마와 성게 모양의 헤어스타일은 인물의 성격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이병헌은 “분장팀, 감독님과 모여 이야기를 했다”며 “머리숱 많고 옆으로 계속 자란 느낌을 살리면 영탁을 잘 드러낼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그 헤어스타일을 하면 (내) 팬들이 다 날아갈 것 같았다”며 “걱정을 조금 했지만 재미있게 시작했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영탁이 권력을 가질수록 머리카락은 점점 뻗쳐가요. 그래서 후반부로 갈수록 그 각도가 조금씩 다르죠. 눈 아래 색도 달라지고요. 작은 변화 요소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을거에요.”
이병헌은 작은 연기 하나에도 진심인 배우로 유명하다. 흥행작을 여러 편 내고 부일영화상 등 각종 영화상에서 주연상을 거머쥐어 ‘믿고 보는’ 배우란 수식어도 얻었지만, 여전히 연기할 땐 부담스럽고 긴장된다고 했다. 이병헌은 “예전엔 어느 정도 지나야, 어떤 연기를 해야 이런 부담감이 없어질까 생각했다”며 “지금 와서 보니 그런 걱정과 떨림은 사라지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그 마음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 같다”며 겸손한 답변을 내놨다. “전 배우로서 대중에게 계속 신비로운 이미지였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저는 예나 지금이나 배우로서 한 가지만 바라요. 대중이 저의 다음 작품을 궁금해하는 거요. 다음 작품이 기대되고, 계속 보고 싶은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웃음)”
남유정 기자 honeybe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