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영감] ‘표면 그리기’ 사라지는 것의 흔적을 남기는 행위
[예술 영감] 박자현 작가
부산·서울 성매매 집결지와 주변
‘작은 문’ 너머의 존재들 기록
“할 수 있는 만큼 그리자 생각”
외부 침범에 붕괴되는 피부로
허물어지는 인체와 풍경 표현
“지나간 모습, 밀려 나가는 것들을 그림으로 기록하는 것에 의미를 두죠.”
박자현 작가는 성매매 집결지와 그 주변 주택가를 그리고 있다. “올해 초 서울 영등포를 찾아갔어요. 영하 18도, 손가락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이 추운 아침이었죠. 다른 때 같으면 건물 사진을 찍는 것을 보고 뭐라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너무 추우니까 그냥 내버려두셨죠.”
박 작가는 영등포역 인근 성매매 집결지에서 ‘길가에 놓인 캐비넷 만큼 작고 좁은 문’을 봤다. “일반적인 집의 문 크기가 아니었어요. 너무 낮고 좁고 작은 문을 가진, 성냥갑 같은 집의 환경이 너무 열악했어요.”
박 작가는 영등포 관련 기사를 찾아봤다고 했다. “성매매 집결지 약 20% 정도가 국가 부지가 포함된 곳에서 영업을 하고 있다고 했어요. 그렇게 돈을 벌고 건물을 가진 포주도 있다고 하는데 성매매 여성들은 그렇게 추운 날 아침부터 거리에 나와 있었죠. 서울이라는 도시가 보여주는 삶의 낙차에 현기증을 느꼈어요.”
성매매 집결지 그림은 2017년 박 작가가 대구예술발전소 입주작가를 한 것이 계기가 됐다. 대구 중구에 있던 자갈마당을 기록하는 작업을 했다. “성매매 집결지를 눈여겨 보게 된 것은 더 거슬러 올라가요. 예전에 미남로터리 근처에 살았는데 그때 로터리 옆에 속칭 ‘방석집’이 있었어요. 옛 버스터미널 뒤쪽으로 규모가 꽤 컸던 걸로 기억해요.” 박 작가는 성매매 업소 앞을 지나가다 문 안에 있는 사람과 눈이 마주친 경험도 있다고 했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재개발 된다는 이야기가 들렸고, 방석집들이 폐업에 들어가더라고요.”
박 작가는 원도심이나 교통 요지에 있던 성매매 집결지가 아파트 단지로 변해가는 모습을 봤다. 여성의 인권 때문이 아니라 부동산 같은 경제 논리가 작동하는 것을 보는 예술가의 마음은 무거웠다.
이전부터 재개발 지역 고양이 등을 그려왔던 박 작가는 ‘한때 여기에 있었던 존재’를 그림으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성매매 집결지 사진을 찍으러 다니면서 여러 이야기를 들었어요. 업소에서 일했던 성매매 여성들이 나이가 들면 주변의 작은 집에 사는 경우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부산의 완월동, 당감동, 서동, 우암동, 미남, 구포…. 박 작가는 우리가 사는 이 도시 어딘가에 있는 쪽문 이면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사실 박 작가는 펜으로 점을 찍은 그림으로 유명하다. 2006년 대안공간 반디에서 가진 첫 개인전 ‘점-철된 몸의 언어’전에서 그는 무수한 구멍의 집합체인 몸을 표현해 주목을 받았다.
“2003년 부산대 미대를 휴학하고 서울에서 1년 정도 고시원 생활을 한 적이 있어요.”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취직을 했으나 시간이 남을 때마다 고시원 작은 방에서 그림을 그렸다. “종이와 펜, 가지고 있는 도구로 밀도 있는 그림을 그려보고 싶었고 그게 점 찍는 작업의 시작이죠. 주어진 상황 즉 공간의 영향이 크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죠.”
박 작가는 점으로 인체와 풍경을 그렸다. 처음에는 작가 주변의 젊은 사람 인체를 그렸다. “대안공간에 입주했을 때 벌레 시체나 식물을 비닐백에 채집해서 곰팡이가 생기는 것을 봤어요.” 그는 곰팡이 하나하나가 도트 형태의 입자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아서 불안했던 시절. 박 작가에게 점 그림은 외부의 침범에 의해 무너지는 피부의 붕괴를 의미했다. “액체를 뒤집어 쓴 ‘비정규직 노동자’ 그림은 언제 닥칠지 모를 재난이나 해고 등을 표현한 작품이죠.” 최근 박 작가는 노년의 인체를 그리고 있다. “나중에 엄마를 기억하고 싶은 마음에 엄마의 얼굴과 몸을 그리고 있어요.”
경주 왕릉, 재개발 지역의 폐허 더미 그리고 인체의 일부. 서로 다른 그림이지만 산 능선처럼 보이는 형상이 비슷하게 다가온다. 박 작가는 ‘허물어져 내릴 것 같은’ 느낌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재개발이 계속되면서 많은 것들이 파괴되고 부서지죠. 사람이 피부를 대고 살던 집이 허물어지면 커다란 산처럼 덩어리가 되잖아요. 풍경 작업이나 성매매 집결지 작업이나 표면을 피부처럼 생각하면서 그려요.” 그는 피부가 마르고 갈라지는 것과 건물 표면이 갈라지고 탈락되는 것은 외적으로 유사성이 있다고 했다.
“작업실에 재개발지 식물 키워”
“버려진 것들이 돌봐주는 느낌”
“성매매 집결지를 처음 기록할 때 ‘내가 이걸 해도 되나’를 여러 번 질문했어요. 외부인으로서 나의 위치를 전제로 해서 ‘보이는 만큼만 하자’ ‘할 수 있는 것만 하자’고 생각했죠. 그렇게 표면이라도, 흔적이라도 남기는 행위를 하고 있어요.”
박 작가는 현재 금정구 회동동에 위치한 예술지구p 입주작가로 활동 중이다. 그의 작업실에는 재개발 지역에 버려졌던 열 종 이상의 유기 식물이 놓여 있다. 지난해 금사공단 택배공장을 다니며 찍은 사진과 함께 ‘미소생물작업잔업’ 전시에 선보이기도 했던 식물들이다.
“어쩔 수 없이 데려왔는데 이상하게 버려졌던 이 식물들이 나를 돌봐주는 느낌이 들어요. 오는 9월 단체전이 잡혀 있고, 연말에 성매매 집결지 등 그림으로 개인전을 할 장소를 찾고 있어요.”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