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멸치 인심 박해지자 욕지도 해상풍력단지 더 욕먹는다
연안업계 어획난에 속 타들어
‘황금어장’ 욕지도는 어군 풍성
풍력발전사업 4곳 주변서 추진
어민 조업구역 감소 ‘노심초사’
난데없는 정어리 떼 습격에 경남지역 연안 멸치잡이 업계 어획난이 가중되면서 불똥이 통영 욕지도 황금어장으로 튀고 있다. 정어리를 피해 몰려든 멸치 덕분에 갈수록 어군이 집중되는 최대 어장에 해상풍력단지가 잇따라 추진되면서 어민들은 마지막 남은 문전옥답마저 뺏기는 건 아닌지 노심초사다.
경남어선어업인연합회는 최근 환경부에 ‘욕지도 해상풍력 발전사업’ 환경영향평가 중점평가사업 지정을 요청했다고 8일 밝혔다. 연합회는 도 내 어선어업 관련 55개 단체, 어민 3000여 명이 연대한 경남 최대 어민 조직이다.
중점사업이 되면 환경영향평가 과정에 환경은 물론 각종 자원과 연관 산업에 미치는 영향까지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특히 어민들이 이해당사자로 참여해 업계 권익 보호에 목소리를 높일 수 있다.
현재 욕지도를 중심으로 한 대형 프로젝트만 4건. 총계획 면적 150㎢로 국제경기가 가능한 축구경기장 2만 2000여 개를 합친 규모다. 어민들은 이대로 풍력단지가 조성되면 가뜩이나 비좁은 조업 구역이 더 줄어들 게 뻔한 데다, 발전기 설치와 가동 그리고 송전 시 발생하는 소음과 진동, 전자파 영향으로 해양 생태계가 심각하게 훼손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연합회는 “앞선 환경영향평가협의회에서 중점사업으로 지정해 주민과 어민 의견이 충분히 반영될 수 있도록 하고 환경영향갈등조정협의회도 구성할 것을 권고했다”면서 “이번 사례가 사회 갈등 관리와 상생의 모범사례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처럼 지역 어민들이 욕지 앞바다 사수에 사활을 거는 이유는 이 일대가 경남 어선업계 최대 조업지이기 때문이다. 욕지도 인근은 각종 어류 서식·산란장으로 난류를 따라 회유하는 멸치 떼와 이를 먹이로 하는 각종 포식 어류가 유입되는 길목이다.
여기에 최근 이상 정어리 떼 출몰로 욕지도 주변 해역의 중요성이 더 주목받고 있다. 해안까지 점령한 수십만 마리 정어리 무리로 인해 갈 곳을 잃은 멸치 떼가 욕지도 인근으로 되돌아오면서 멸치를 먹이로 하는 포식 어류들도 이곳으로 몰려오고 있다.
연안에서 멸치가 자취를 감추면서 업종 간 양극화도 심화하고 있다. 가까운 바다에서 멸치를 잡는 연안 업계는 반 토막 난 어획량에 속이 타들어 간다. 남해군수협 위판자료를 보면 6월 유자망 선단이 어획한 생멸치는 747t이다. 역대 최악이라던 지난해 1251t에도 한참 못 미친다. 정치망도 사정은 마찬가지. 어민들은 남해를 비롯해 통영, 거제권 어망에 온통 정어리만 들어찬다며 하소연이다. 반면 먼바다에서 조업하는 권현망 선단은 어획량이 오히려 늘었다. 7월 한 달간 조합 공판장을 거래된 마른 멸치는 총 1180t 상당으로 지난해 753t보다 60% 이상 증가했다.
덕분에 미운털이 단단히 박혔지만 사실, 한반도 연안의 본래 점령군은 정어리였다. 1980년대만 해도 국내 연안에선 멸치보다 정어리가 많이 잡혔다. 1987년에는 공식 집계된 어획량이 19만 4000t에 달했지만, 이후 자취를 감춰 2006년에는 어획량 ‘0’을 기록했었다. 그러다 2011년부터 다시 잡히기 시작해 지난해 1만 2000t까지 늘었다.
문제는 시기다. 지금 잡히는 정어리는 기름기가 많아 상품성이 떨어진다. 특유의 비린내도 심해 대부분 양식장 사료나 젓갈용으로 사용된다. 양이 많아 조업은 힘에 부치는데, 정작 값은 멸치의 3분의 1 수준이다. 갓 잡아 올린 것들로 40kg 들이 상자를 넘치게 채워도 2만 원 안팎이다. 어민 입장에서 애물단지나 다름없다.
전문가들은 국내 연안 수온과 먹이 환경 변화가 정어리 대량 증식과 유입을 부추겼다고 지적한다. 정어리 떼가 좋아하는 표층은 따뜻하고 저층은 차가운 바다에 먹이 생물인 플랑크톤이 풍부해지면서 생존에 유리한 먹이 사슬이 만들어졌다는 설명이다. 때문에 갈수록 개체수가 증가하고 출몰 시기도 더 앞당겨질 공산이 크다는 판단이다. 올해만 해도 작년과 비교해 6월에서 4월로 잡히는 시기가 빨라지고 어획물 중 비율도 90% 이상으로 커졌다.
어선업계 관계자는 “어군을 쫓아야 하는 선단 입장에선 싫든 좋든 욕지도로 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이 바다마저 (해상풍력에) 뺏기면 어민들은 생업을 접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 김현우 기자 khw82@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