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묻지마 범죄' 각자도생 시대, 촘촘한 대책 나와야
조현병·망상장애 8명 중 1명만 정신 관리
중증 정신질환자 국가 책임지고 치료해야
흉기 난동에 살인 예고까지 ‘묻지마 범죄’가 잇따르자, 국민 불안이 극에 달했다. 부산의 한 고등학교에서도 3학년 학생이 수업 중 교실을 나가려다 교사에게 제지당하자, 문을 막고 흉기로 위협하는 일이 발생했다. 신림역과 서현역 사건이 발생한 후 흉기 난동을 일으키는 모방 범죄가 학교 현장에까지 파고드는 등 유행처럼 번지는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국민 사이에 ‘나라가 지켜 주지 않는다’는 불신이 높아지면서 전기충격기를 비롯한 호신용품 구매가 급증하는 등 각자도생의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나서 ‘전 국민 정신 건강 종합 대책’ 마련을 관련 부처에 지시했지만, 국민 불안을 잠재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최근 잇따르고 있는 ‘묻지마 범죄’는 많은 경우 정신질환자에 의해 발생한다. 서현역 흉기 난동과 대전 고등학교 교사 피습 사건 피의자의 공통점이 정신질환을 앓다 치료를 중단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정신 건강 관리와 조기 치료가 이뤄졌더라면 비극을 막을 수도 있었다고 안타까워한다. 현행 국가 시스템으로는 당사자가 거부하면 입원이 어려워 치료를 받지 않는 정신질환자가 급속도로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보건복지부 국립정신건강보건센터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조현병·망상장애 환자 8명 중 1명만 정신 건강 관리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정신 건강에 대한 국가의 허술한 관리 시스템이 국민 불안을 더 부추기고 있다는 이야기다.
2019년 경남 진주에서 정신질환을 앓던 안인득이 아파트에 불을 지르고 흉기를 휘둘러 5명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할 당시 대한신경정신의학회를 중심으로 정신질환자에 대한 국가 책임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었다. 이 때문에 사법기관이 중증 정신질환자의 입원 치료를 결정하는 ‘사법 입원제’ 도입이 검토됐으나 인권 논란 등으로 입법이 무산됐다. 의료계에서는 이번이야말로 정신질환에 대한 국가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도심에 경찰특공대와 전술 장갑차를 배치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시민들의 평온한 일상이 위협받는데 국가 차원의 근본 대책이 있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내 임기 동안 국민 마음을 챙길 수 있는 시스템을 촘촘하게 만들겠다”고 했다. 문제는 예산이 수반돼야 하고 입법화에 따른 논란을 피할 수 있는 꼼꼼한 검토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족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현행 중증 정신질환자 관리 시스템을 국가 책임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정신보건 예산이 OECD는 5% 수준인데 우리는 2%에 불과하다. 정신질환은 초기 집중 치료와 사회 복귀를 위한 지속적 노력이 중요한데 국가의 과감한 지원과 투자 없이 불가능한 일이다. 보여 주기식이 아니라 국민이 정말 믿고 안심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