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희의 위드 디자인] 디자인과 기업가정신
에스큐브디자인랩 대표
유망한 기회를 사업으로 만드는 도전
끊임없는 시도와 창의적 아이디어 승부
새로운 길 개척하는 사람들 많아지길
얼마 전 한동대학교 디자인과에서 특강이 끝나자, 한 학생이 “언젠가 창업하고 싶은데요.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라는 질문을 했다. 순간 말문이 막혔다. 나이 50에 디자인 창업을 했으나, 원래 내 인생 계획에 창업은 없었다. 관심도 없었으니 당연히 창업 준비를 해 본 적이 없었다. 당황스러웠으나 지난 30여 년의 디자인 커리어가 머릿속을 스쳐 갔다.
“교수를 그만두고 미얀마에 갔던 경험이 없었다면 창업하지는 못했을 것 같다”고 답을 했다. 다양한 종류의 창업이 있겠지만, 디자인 창업은 이제까지 축적된 전문 분야의 지식이 창업의 기초가 되었다. 그렇다고 해도 ‘월급 받는 것이 편한’ 나 같은 사람이 창업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은 아니다. 그렇다면 나의 기업가정신은 어디서 온 것일까?
결국 나의 창업 준비는 ‘밑바닥에서 새로 시작해 보는 경험’이었다. 미얀마의 NGO에 들어갔지만, 조직이 없었다. 프로젝트팀원이 있었지만 모두 가르치면서 이끌어야 했기에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일을 나 스스로 했다. 직접 데이터를 엑셀에 입력하고, 분석하고, 아이디어 내고, 최종 PPT 발표 자료까지 혼자서 만들면서 허탈함으로 웃은 적이 있다. “어째 내 인생은 거꾸로 흐르고 있네?” 대기업에 있을 때는 큰 목표만 세우면 업체들이 실행을 해서 결과를 가지고 왔다. 대학에서 산학 과제를 진행할 때는, 물론 갑과 을이 바뀌어 결과를 만들어 가야 하긴 했지만, 대학원생들이 자료를 만들어 오면, 나는 말로 정리만 해 주면 되었다. 그런데 미얀마에서는 모든 결과를 직접 내가 만들어 내고 있었다. 투덜댔지만, 이렇게 모든 것을 처음부터 새롭게 해 보는 경험은 나를 초심으로 돌아가게 하고, 창업의 근육을 만들어 내었다. 조직 떼고, 명함 떼고, 포지션 떼고 다시 시작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또 다른 창업 준비라고 한다면 디자인 씽킹을 직접 나의 커리어에 적용해 본 것이다. 한국에 다시 들어와서 2년 정도 쉬면서 무얼 할지 고민했다. 문득, 전문 분야인 디자인 씽킹으로 다른 조직의 문제점들은 발견하고 해결해 주면서, 나의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디자인 씽킹을 나의 인생 설계에 적용해 보았다. 공감, 문제 정의, 아이디어 도출, 프로토타입, 테스트를 거치는 프로세스대로 새롭게 커리어를 디자인했다. 대략 3개 정도의 커리어 프로토타입이 나왔는데 하나씩 테스트하며 다듬어 나갔다. 그중 하나가 디자인 창업이었다. 물론 창업은 최하위 순위였지만, 결국 삶은 나를 창업으로 이끌었다.
창업은 이제 흔한 일이 되었다. 2021년 글로벌 기업가정신 연구협회(GERA)의 발표에서 우리나라 기업가정신지수가 50개국 중 6위라고 한다. 변화가 놀랍다. 90년대 ‘W 이론’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면우 교수님은, 10여 년 전에 유니스트 디자인 및 인간공학부 석좌교수로 계시면서 학생들에게 ‘창업’을 강조했다. 대기업 출신으로 기업가정신이 별로 없었던 나는 그 당시 경험이 없는 청년들의 창업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반신반의하며 지켜보았다. 그 당시 상담 왔던 팀 중의 하나가 ‘클래스101’이다. 지금은 유니스트의 대표 학생 창업 회사이다. 그런데 10여 년이 지난 지금, ‘청년이라면 한 번쯤은 창업을 시도해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하는 마음으로 바뀐 나를 발견한다.
최근 들어, 대기업, 안정된 직장들, 커리어의 정점을 달리던 지인들의 퇴직 소식이 많이 들려온다. 40대 말에서 50대 초다. 기존의 조직에서는 성공한 사람들이지만 대부분 새로운 시작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는 않아 당황스러움과 두려움을 갖는 것을 보며 기업가정신을 생각했다. 또한 지난달에는 회사 초기 멤버 2명이 창업을 했다. “더 늦기 전에 하고 싶던 일을 하고 싶다”는 청년들이다. 이들을 보면서 조직을 떠나서, 자기 주도적으로, 실패의 두려움을 벗어나서 기업가정신을 가지고 혁신과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자신이 있는 곳을 무궁무진한 기회가 있는 곳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더 많이 생기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피터 드러커는 기업가정신을 ‘불확실성과 위험을 감수하고 유망한 기회를 사업으로 만들 수 있는 도전 정신’이라고 정의한다. 끊임없는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 스스로의 시스템을 만들어 내고,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는데, 디자이너의 사고법을 조금만 활용해 보자. 기업가정신 교육에 디자인 씽킹이 접목되고 있는 이유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사용자들을 공감하고, 문제를 찾아내고, 정의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함께 해결책을 찾아내기에 좋은 전략이다. 기업가정신에 디자인 씽킹이라는 날개를 달자. 물론 아직 초보 창업가인 나는 또한 ‘기회를 사업으로 바꾸는’ 기업가정신을 더욱 함양할 때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