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원 칼럼] 태풍에도 끄떡없는 한일 민간 교류

임성원 기자 forest@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논설실장

6일 열린 대마도 조선통신사 행렬
부산 문화사절단, 4년 만에 방문
한일 ‘성신교린’의 전통 되새겨
춤패 배김새 30년째 참여 눈길
‘부산·쓰시마 교류의 꽃’ 떠올라
정치 바람 타지 않는 민간 교류 절실

춤패 배김새가 8월 6일 일본 대마도 이즈하라항에서 열린 조선통신사 행렬에 참가해 한국 춤사위를 선보이고 있다. 임성원 기자 춤패 배김새가 8월 6일 일본 대마도 이즈하라항에서 열린 조선통신사 행렬에 참가해 한국 춤사위를 선보이고 있다. 임성원 기자

기차도 탈선시킬 수 있는 강한 위력의 제6호 태풍 ‘카눈’이 10일 오전 경남 남해안에 상륙해 한반도를 관통한다고 한다. 카눈은 오키나와 인근에서 중국으로 갈지, 일본으로 향할지, 한반도를 관통할지 갈지자걸음을 계속했는데 기어코 최대 500mm가 넘는 물 폭탄을 전국에 쏟아부을 기세다. 집중호우와 폭염에 시달리다 이번에는 태풍이라니, ‘극한’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이상 기후 앞에 심신도 극한으로 내몰리는 나날이다.

6일 일본 대마도 이즈하라항에서 열린 조선통신사 행렬에 참가하고 있는 춤패 배김새의 최은희 전 경성대 교수(오른쪽)와 장래훈 천안시립무용단 객원 안무가. 임성원 기자 6일 일본 대마도 이즈하라항에서 열린 조선통신사 행렬에 참가하고 있는 춤패 배김새의 최은희 전 경성대 교수(오른쪽)와 장래훈 천안시립무용단 객원 안무가. 임성원 기자

태풍 카눈의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8월 5~6일 일본 나가사키현 쓰시마시에서는 한일 교류의 이정표에 남을 행사가 열려 눈길을 끌었다. 복원된 조선통신사선이 부산항을 출항해 대마도에 입항했고, 부산문화재단을 비롯한 100여 명의 한국 방문단이 이즈하라항 축제에서 조선통신사 행렬을 재현하는 등 교류를 확대했다. 통신사선은 1811년 12차 사행 이후 212년 만에 ‘13차 항해’에 나선 셈이고, 방문 교류는 엔데믹을 넘어 4년 만에 이뤄졌다. 출항에 앞서 영가대에서 지낸 해신제 덕분인지 태풍의 위력이 실린 집채만 한 파도에도 무사히 대한해협을 오갈 수 있었다.


6일 일본 대마도 이즈하라항에서 열린 조선통신사 행렬에서 풍물로 춤패 배김새의 길을 터고 있는 남산놀이마당. 임성원 기자 6일 일본 대마도 이즈하라항에서 열린 조선통신사 행렬에서 풍물로 춤패 배김새의 길을 터고 있는 남산놀이마당. 임성원 기자

기자는 조선통신사 한일 문화교류가 닻을 올린 2003년부터 현장을 두루 지켜봤다. 그해 9월 부산에서 개최된 한국의 조선통신사문화사업추진위원회와 일본의 조선통신사연지연락협의회의 민간 교류 총회에 이어 11월 일본 오카야마현 우시마도에서 열린 ‘에게해 축제’의 조선통신사 행렬에 참가했다. 이듬해인 2004년 8월 대마도 ‘아리랑 축제’의 조선통신사 행렬 현장도 찾았는데, 이번에 실로 20년 만에 대마도 교류 현장을 다시 방문한 셈이다. 예나 지금이나 조선통신사를 향한 일본 현지의 반응은 여전히 뜨겁기만 했다.

이즈하라항 축제가 절정에 다다른 6일 저녁 춤패 배김새가 이즈하라항 특설무대에 올라 ‘오방신장무’로 공연의 막을 올리고 있다. 임성원 기자 이즈하라항 축제가 절정에 다다른 6일 저녁 춤패 배김새가 이즈하라항 특설무대에 올라 ‘오방신장무’로 공연의 막을 올리고 있다. 임성원 기자

부산과 대마도가 중심이 되어 2003년부터 본격화한 조선통신사 민간 교류 사업 이전부터 조선통신사를 고리로 부산과 한국을 일본에 널리 알려 온 문화사절단이 있다. 최은희 전 경성대 교수가 이끄는 부산의 춤패 배김새다. 부산시립무용단의 바통을 이어받아 배김새가 1993년부터 이즈하라항 축제에 참여해 왔으니, 햇수로만 올해로 30년 세월이다. 8월 첫째 주에 열리는 축제를 위해 해마다 초여름부터 연습에 들어갔고 ‘부채춤’ ‘삼고무’ ‘장고춤’ ‘소고춤’ ‘물맞이굿’ 등 레퍼토리만 30개에 달한다.

6일 이즈하라항 특설무대에서 단아한 형식미의 ‘산조춤’을 선보이고 있는 춤패 배김새. 임성원 기자 6일 이즈하라항 특설무대에서 단아한 형식미의 ‘산조춤’을 선보이고 있는 춤패 배김새. 임성원 기자

올해 대마도를 찾은 춤패 배김새는 부산 고유의 춤사위인 배김새를 떠올리듯 부산무용협회 춤꾼들의 참여를 통해 지역성을 강화했다. 1.8km에 이르는 조선통신사 행렬에서는 남산놀이마당의 풍물 소리에 맞춰 흥겨운 춤사위를 선보여 연도를 메운 시민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축제가 절정에 달한 오후 7시 30분 이즈하라항 특설무대에 오른 배김새는 40분에 걸쳐 차례로 ‘오방신장무’ ‘산조춤’ ‘입춤’ ‘태평무’ ‘북놀이’ ‘지전춤’ ‘배김허튼춤’을 공연해 큰 박수를 받았다.

6일 이즈하라항 특설무대에 오른 춤패 배김새가 기방예술의 꽃인 ‘입춤(성주풀이)’을 공연하고 있다. 임성원 기자 6일 이즈하라항 특설무대에 오른 춤패 배김새가 기방예술의 꽃인 ‘입춤(성주풀이)’을 공연하고 있다. 임성원 기자

객석의 뜨거운 열기는 거리로도 이어져 시내를 걷다 만난 시민들은 따뜻한 환대의 인사를 건넸고, 조선통신사 행렬을 준비한 주최 측은 “부산과 쓰시마 교류의 핵심이자 꽃은 배김새”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30년에 걸쳐 16차례나 조선통신사 행렬에 참가하고, 또한 주 무대 공연을 장식한 춤패 배김새가 쌓아 올린 ‘성신교린’(誠信交隣·성실과 믿음으로 사귄다)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6일 이즈하라항 특설무대에서 망자의 넋을 달래는 ‘지전춤’을 선보이고 있는 춤패 배김새. 임성원 기자 6일 이즈하라항 특설무대에서 망자의 넋을 달래는 ‘지전춤’을 선보이고 있는 춤패 배김새. 임성원 기자

부산과 대마도가 한일 교류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운명적이랄 수 있다. 부산은 일본으로 가는 국경의 ‘관문 도시’이고, 대마도는 현해탄과 대한해협을 건너 양국을 잇는 ‘국경의 섬’이기 때문이다. 500여 명의 조선통신사가 대마도에 오면 800여 명의 쓰시마 사람들이 함께 에도(지금의 도쿄)까지 동행했고, 부산의 왜관에는 600여 명의 쓰시마 사람들이 거주했다. 한때 쓰시마번(藩)은 조선과의 무역으로 ‘서쪽 지방 최고의 부자’로 불릴 정도로 윤택했다고 한다.

6일 이즈하라항 특설무대에서 부산 경남의 대표적인 춤사위인 ‘배김허튼춤’으로 공연의 신명을 더하고 있는 춤패 배김새. 임성원 기자 6일 이즈하라항 특설무대에서 부산 경남의 대표적인 춤사위인 ‘배김허튼춤’으로 공연의 신명을 더하고 있는 춤패 배김새. 임성원 기자

한국과 일본은 조선통신사와 왜관을 통해 문화·경제 교류의 전통을 쌓아 왔지만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반목과 질시의 흑역사를 거듭하기도 했다. 조선통신사선만 하더라도 원래 2019년 8월 대마도로 향할 예정이었지만 일본의 경제 보복에 따른 지난 정부와 부산시정의 ‘대일 교류 전면 재검토’ 정책에 따라 무산돼 올해로 4년이나 늦춰지는 파란을 겪었다.

6일 이즈하라항 특설무대에서 40분간 7개의 한국춤을 선보인 춤패 배김새가 최은희 단장 등 출연진이 모두 무대에 나온 가운데 객석에 피날레 인사를 하고 있다. 임성원 기자 6일 이즈하라항 특설무대에서 40분간 7개의 한국춤을 선보인 춤패 배김새가 최은희 단장 등 출연진이 모두 무대에 나온 가운데 객석에 피날레 인사를 하고 있다. 임성원 기자

정권의 향배에 따라 부침을 거듭하는 한일 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민간 교류가 활성화되어야 한다. 민간 교류의 핵심은 문화·경제 교류의 강화에 있다. 조선통신사와 왜관의 전통을 오늘에 되살린 문화예술·축제 교류, 부산-후쿠오카 포럼, 부울경-규슈 경제공동체 등을 끊임없이 모색할 필요가 있다. 한일 평화와 연대의 새 시대는 정치적 이상 기후에 끄떡없는 튼실한 민간 교류의 가교 위에서 가능하기 때문이다.


임성원 기자 forest@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