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44년 만의 노메달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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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강’, ‘우주 최강’으로 불리던 한국 양궁에 매우 이례적인 일이 벌어졌다. 지난 6일 독일 베를린에서 막을 내린 2023 세계양궁선수권대회에서 남녀 개인전 ‘노메달’의 성적표를 받은 것이다. 세계를 호령하던 한국 양궁, 특히 여자 양궁은 누구도 세계 최강임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던 종목이다. 선수들이나 국민이나 모두 금메달은 항상 대한민국의 ‘따 놓은 당상’으로 여겼다.

그러나 무엇이든 변하지 않는 것은 없는 모양이다. 세계 모든 양궁팀의 본보기였던 한국 양궁이 세계선수권대회 남녀 개인전에서 단 하나의 메달도 따지 못한 것이다. 한국 여자대표팀이 세계선수권대회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단 하나의 메달도 따지 못한 것은 처음 출전한 1979년 베를린 대회 이후 44년 만이라고 한다. 남자대표팀의 개인전 노메달은 1981년 이후 42년 만에 처음이다.

국민은 물론 선수들 자신도 충격적인 성적에 적잖이 놀랐을 것 같다. 여자대표팀 3명은 개인전 8강전에서 모두 탈락했고, 남자대표팀에선 1명만 8강전에 진출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한국 선수들이 항상 맨 앞자리에 있던 모습만 보아 왔던 우리 국민들에게는 매우 낯선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충격적인 결과임은 분명하지만, 한편 달리 생각해 보면 40년 넘게 짓눌려 왔던 우승이라는 중압감에서 우리 선수들이 놓이게 된 점은 다행스럽다. 매번 따 놓은 당상처럼 우승하다 보니, 오히려 정상에 오르기까지 고되고 힘든 과정이 덜 주목 받는 측면도 없지 않았다. 이번 노메달의 이변이 오히려 국민들에게 ‘당연한 우승’이라는 것은 없다는 점을 상기시켜 주는 계기가 됐다. 또 선수들도 이참에 한 템포 쉬어 가는 여유를 가질 수 있다면 그것도 전혀 나쁘지 않다. 여전히 대한민국을 빼놓고는 세계 양궁을 이야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결과를 놓고 대표팀의 이변을 거론할 순 있겠으나, ‘수모’라는 등 선수들을 깎아내리는 말은 적절하지 않다. 사실 그렇게 오랫동안 우리나라가 세계 최강의 자리를 지켰던 분야가 양궁 외에 또 무엇이 있었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우승으로 국민들을 기쁘게 하고, 용기를 북돋워 줬다. 그 정도만 해도 한국 양궁은 충분히 상찬받을 자격이 있다. 44년 만의 개인전 노메달이라고 주눅들 필요도 전혀 없다. 다시 새로 출발하면 그뿐이다. 한국 양궁은 충분히 그럴 만한 실력과 잠재력이 있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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