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다이하드 모기
모기를 가볍게 보고 하는 말이 있다. 견문발검(見蚊拔劍)이다. 모기 잡겠다며 칼 빼드는 꼴이 우습다는 의미인데, 물정 모르고 하는 소리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매년 모기로 인해 죽는 사람이 최소 70만 명이라고 전한다. 전쟁이나 테러 따위로 인한 사망자는 연간 40만 명 안팎이다. 〈인류 최대의 적, 모기〉의 저자 앤드루 스필먼 하버드대 교수가 “지구상의 어떤 곤충도 사람에게 이토록 직접적으로 치명타를 가한 경우는 없다”고 단언한 데에는 그런 배경이 있다.
인류와 모기는 까마득한 옛날부터 전쟁을 치르고 있지만 승자는 불분명하다. 아니, 승부의 추는 점점 모기 쪽으로 기우는 듯하다. 사람 숫자는 기껏해야 80억 정도인데 비해 모기는 110조 마리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정이 이렇다면 칼이 아니라 더 한 것도 빼들어야 한다. 그래서 인류는 모기를 박멸하기 위한 기술을 집요하게 개발해 왔다. 씨를 말려 버리겠다며 방사선을 쪼아 불임 모기를 만들기도 했고, 모기 추적용 레이저도 만들었다. 하지만 모두 실패했다.
무엇보다 요즘 모기, 좀체 죽지를 않는다. 모기향 따위에는 눈도 꿈쩍 않는다. 시중에 나와 있는 살충제를 죽어라 뿌려 대도 별 효과가 없다. 다이하드(die-hard) 모기가 된 것이다. 급기야 인류는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WHO는 “올해 모기 매개 질병이 크게 확산할 수 있다”고 경고했고, 글로벌 언론 매체인 블룸버그 오피니언도 “오늘날 모기의 위협이 보건 체계를 잠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모기의 위협이 증대한 것은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 때문이란다. 지구가 뜨거워지면서 모기의 서식환경이 크게 좋아졌고, 나아가 전에 없던 독한 개체로 진화하게 됐다는 것이다. CNN은 “기후변화의 승자는 모기”라고 탄식했다.
그래서인지 올해 일본뇌염주의보가 예년보다 20일 가까이나 빨리 발령됐다. 일본뇌염을 옮기는 작은빨간집모기의 개체수도 급증했다. 질병관리청이 지난달 말 부산에서 채집한 모기를 조사했더니 10마리 중 9마리 꼴로 작은빨간집모기인 것으로 확인됐다. 모기가 옮기는 또 다른 병인 말라리아에 걸린 환자도 작년보다 2배 이상 늘었다. 안 그래도 난적인 모기가 더욱 가공할 상대가 된 것이다. 250년쯤 전 다산 선생이 ‘증문(憎蚊·모기를 증오한다)’이라는 시를 통해 토로한 대로, 기겁담락(氣怯膽落·기겁하고 간담이 떨어짐)할 일이 아니겠는가.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