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모든 것을 쓰고 떠난 한국 현대문학사의 표징
이청준 평전/이윤옥
<이청준 평전>은 한국 현대문학사의 큰 표징인 이청준(1939~2008)의 문학과 삶을 담았다. 평전을 뛰어넘는 평전, 이청준에게 아주 깊숙이 들어가는 글이다. “이청준의 삶을 글로 다시 살아보려고 한다”는 표현에 어울리는 평전이다.
평전을 쓴 이윤옥 평론가는 2년 전 3인칭으로 완성했다가 갈아엎고 1인칭으로 다시 썼다고 한다. 이청준이 죽기 3, 4 달 전에 그에게 말했다고 한다. “부디 네 상상력이 내 상상력을 이겨서 내가 꾀한 모든 자기합리화를 벗겨 내 맨얼굴을 보여주기 바란다.”
이청준은 오만함 오연함 의연함을 갖춘 이였다. “늘 자신이 최고여야 한다고 생각하며, 세속적으로 인정받고 싶어 하는 강한 욕망을 가졌다”는 것이다. 그 욕망으로 그는 자신의 맨 얼굴을 응시하려 했다는 것이다. 이청준은 어려서부터 마을의 천재였다. 고교 시절 고향집이 파산하면서 호남 갑부 집에 가정교사로 들어가게 되는데 그는 여기서 복수심과 새로운 욕망, 지배욕을 가지게 된다. 이청준은 사람을 돈과 권력이 아니라 ‘자유’로, 문학으로 지배하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 현씨집을 포함한 사람들의 정신을 지배하겠다는 무서운 야망으로 법대가 아니라 독문과를 지원했다는 것이다. 가족과 마을의 희망을 저버린 ‘알 수 없는 선택’ 때문에 그는 20여 년 고향에 갈 수 없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내 소설들은 한마디로 제 삶의 부끄러움 때문에 씌어지기 시작했다’는 이청준의 고백은 말 그대로의 부끄러움이 아니라 그 근저에 큰 욕망이 도사리고 있는 부끄러움이었다고 할까.
뜻밖의 장면도 있다. 가난한 사회 초년병 시절 이청준은 슬롯머신에 빠진 적이 있다고 한다. 결혼과 동시에 끊기는 했지만 한때 월급을 가불해 탕진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것을 소설로 썼다. 같은 맥락에서 IMF 경제 위기가 왔을 때 그는 세상을 읽는 통로이자 세상과의 싸움에 대한 전투의식을 고취할 수단으로 주식투자를 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시인의 시간’이란 꽤 긴 소설도 썼다. 주식투자에서 적은 돈으로 소소한 재미도 봤고, 작품도 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미로서 이청준을 말할 수는 없다. 이청준은 뛰어난 소설을 통해 첨예한 세계를 그려냈는데 그것은 그가 내처 짐 지고자 했던 우리의 문제적 근대화 에 대한 고뇌와 그 극복의 정신사를 담고 있다. 특히 그는 1980년 광주를 내내 앓았다. ‘비화밀교’ ‘키 작은 자유인’ 등의 작품이 그 고통의 표현이었다. 그는 글로써 세상을 바꿀 수는 없었지만 ‘어떤 소망으로 하여 모든 사람들이 한데 뭉쳐서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을 탄생시키’는 것을 내다보고자 했다. 큰 힘을 갖지 못한 작은 시민, 프티부르주아…, 드러나지 않아 알 수 없었던 우리의 거대한 소망이 임계점에 도달해 터질 때 세계 질서는 방향을 튼다는 것을 말하고자 했던 것이다. 권력의 폭력에 맞선 역사와 시대의 회복을 내다보고자 한 것이었다.
이청준과 평론가 김현은 참 많이 다투고 화해한 지적 긴장, 필생의 친구였다. 김현의 묘비명은 ‘삶은 아픔이며, 늙음이다. 그러나 놀라워라. 그 아픔과 늙음 사이로 구원의 뜨거운 빛이 스며든다.’는 것이다. 그 구원의 뜨거운 빛을 이청준도 쓰고자 했던 것이다.
이청준은 정말 담배를 좋아했다. 그는 폐암에 걸렸고, 암이 뇌로 전이됐다. 그런 말을 했다. “삶을 다 바쳤는데, 뭘 또 바치라고 내게 이런 고통을 주는지….” 부끄러움과 결벽증, 글을 쓰는 행위의 사회적 역할, 삶과 죽음의 문제, 고향의 의미, 억압과 탈출 그리고 화해. 장편 17편, 중단편 155편, 희곡 1편, 200자 원고지 5만여 장, 그는 그 모든 것을 쓰고 떠났다. 우리가 기억하니 아직도 그는 떠난 게 아니다. 이윤옥 지음/문학과지성사/548쪽/2만 2000원.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