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희와 함께 읽는 우리 시대 문화풍경] 해방의 노래와 신생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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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대학원 예술·문화와 영상매체협동과정 강사

윤인구 작사, 금수현 작곡 ‘8월 15일’ 악보. 남영희 제공 윤인구 작사, 금수현 작곡 ‘8월 15일’ 악보. 남영희 제공

19세기 중엽 이탈리아는 여러 국가로 분열된 상태였으며, 밀라노가 위치한 북부 지역은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베르디의 ‘나부코’는 바빌론 유수(幽囚)를 다룬 오페라다. 1842년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서 초연한 이 오페라는 이탈리아 통일운동 리소르지멘토와 민족주의를 한껏 고양했다.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은 노예로 끌려간 히브리인들이 고향을 그리는 노래다. “오, 너무나 사랑하는 빼앗긴 조국”이라는 노랫말에 이탈리아인들의 피는 뜨겁게 끓어올랐다. 노래는 혈탄이었다.

식민지시대 항전의 노래가 독립을 향한 탄환이었다면, 해방 직후 노래는 새날을 맞은 민족의 함성이었다. 노래보다 더 벅차게 이날의 감격을 표현할 수 있는 매체가 어디 있었으랴. 새로운 민족국가건설에 대한 열망만큼 수많은 해방가요가 대중의 심장에 깊이 파고들었다. 1945년 8월 17일, 금수현이 작곡한 ‘새 노래’는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발 빠르게 응답한 해방가요다. 만세 행렬이 행진하며 부르기에 적합했다. 삼천리강산에 새 빛이 밝았으니 “자유의 종소리”를 영원히 울리자는 결의가 부산의 거리 곳곳을 메우며 퍼져나갔다.

‘8월 15일’은 경상남도 공식 해방기념일 노래로 지정되어 지역사회에서 널리 부른 해방가요다. 도학무과장 윤인구가 쓴 노랫말에 금수현이 곡을 붙였다. 구포은행과 구포사립구명학교를 설립한 선각자 윤상은의 맏아들 윤인구는 식민지시대부터 민족운동에 투신했다. 그는 노랫말에 죽음의 쇠사슬과 같았던 압제에서 벗어난 감격과 해방 조국의 미래를 담았다. “만년의 역사를 새롭게 써나가자”는 결의는 한낱 꿈에 그치지 않았다. 부산사범학교와 부산대학교 설립을 통해 교육입국의 뜻을 실천했다. 한국전쟁기 종 모양의 설계도 한 장으로 부산대학교 부지 50만 평을 지원받은 일화는 유명하다. 진리의 종소리는 그가 꿈꾸었던 또 다른 노래가 아니었을까.

노래는 힘이 세다.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운영이 파행을 거듭하는 사이, BTS를 소환하려는 시도를 보면 이를 절감할 수 있다. 우리가 각별히 주목해야 할 것은 노래에 담아낸 메시지다. 사랑과 희망의 가치나 기후위기를 노래한 BTS의 음악은 우리 삶의 근본적인 가치를 일깨우는 목소리가 아니었던가. 노래는 어느 시대에나 시대정신을 실어 나르며 대중의 무딘 감각을 일깨운 금빛 날갯짓이자 진리의 종소리다. 히브리 노예들의 사무치는 향수가 금빛 날개를 타고 고향 언덕과 강둑에 끝내 가닿았듯이. 삶의 조건과 환경이 급변하는 오늘날, 노래는 시대와 삶을 어떻게 담지해야 하는가. 우리는 지금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할까. 금수현과 윤인구가 상상했던 신생의 꿈, 우기에도 결코 젖어서는 안 될 그 오랜 꿈을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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