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의 월드 클래스] '바비'의 실패가 낯선 서양

김형 기자 mo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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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부 차장

영화 ‘바비’가 전 세계적으로 화제다. 바비 인형은 많은 서양인의 추억을 담은 문화적 상징이어서 개봉 전부터 관심을 받았다. 예상대로 북미를 비롯한 서구권에서 바비 흥행 성적은 뜨겁다. 지난 7일 기준 바비는 3주 연속 북미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데 이어 글로벌 흥행 수익 10억 3148달러(한화 약 1조 3471억 원)를 돌파했다. 바비가 온 세계를 떠들썩하게 하는데 유독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는 나라가 있다. 바로 한국이다. 7일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바비의 누적 관객 수는 지난달 개봉 이후 51만 명을 겨우 넘겼다.

서양에서는 ‘바비가 우리에게 인기를 얻고 있으니 한국에서도 당연히 흥행하겠지’라고 생각했던 걸까? 바비가 한국에서 바닥을 치자 북미를 비롯한 서양 언론은 그 이유가 궁금했던 모양이다.

상당수 서양 언론은 바비가 실패한 이유를 ‘한국 내 페미니즘에 대한 부정적 정서’로 몰아갔다. 한 외신은 한 여성 권익 운동가의 인터뷰를 통해 “페미니즘이라는 말은 한국의 많은 개인에게 더러운 단어로 여겨진다”고 지적했다. 남성 중심 사회와 성차별에 대한 풍자 등 바비가 많은 부분을 할애한 장면이나 대사들이 페미니즘에 부정적인 한국의 많은 관객에게는 꽤나 불편해 영화가 실패했다는 논리이다. 여기다 서양 언론은 ‘한국보다 페미니즘에 개방적인 서양 관객들은 바비를 잘 소화하잖아. 문제는 한국이야’라는 뉘앙스까지 내비치며 그들의 우월성마저 강조하려는 분위기까지 전해진다.

물론 한국에는 페미니즘을 놓고 갈등이 존재한다. 그렇다고 한 영화의 실패를 페미니즘 하나로 몰고 가기에는 억지스런 측면이 강하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바비의 실패를 놓고 다양한 이유를 거론한다. 북미 특유의 블랙 코미디 화법이나 바비 문화는 한국 정서에 맞지 않아 감정 이입이 힘들다고 한다. 엉성한 스토리는 서양에는 ‘추억 팔이’로 통했으나 한국 관객에게는 실망을 안겼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처럼 흥행 실패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을 법한데 서양 언론 주장처럼 바비 실패의 주 원인이 페미니즘에 대한 부정적 시선 때문이라고 해보자. 그렇다면 ‘여성 영웅들’이 가득하고 ‘지질한 남성 악당’만 등장하는 페미니즘 성향의 한국 영화 ‘밀수’의 흥행은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참고로 밀수는 개봉 2주 만에 손익분기점 400만 돌파를 코앞에 두고 있다. 밀수의 흥행은 같은 페미니즘 성향의 영화라고 하더라도 한국과 서방이 바라보는 시각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특정 영화나 현안을 두고 서구권이 다른 문화의 사람들에게 그들과 똑같은 감정을 이입하거나 즐거워하길 기대하다가 그렇지 않을 경우 이상하게 바라보는 자기 중심적 시선은 여전히 불쾌하다.


김형 기자 mo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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